고고한 매화, 춤사위로 거듭나다

국립무용단 '매창-매화, 창에 어리다' 17일부터 국립극장


‘큰 가지 작은 가지 눈 속에 덮였는데/ 따뜻한 기운 알아 차려 차례로 피어나네/ 옥골 빙혼이야 비록 말을 안하지만/ 남쪽 가지 봄뜻 따라 가장 먼저 망울 맺네. 코러스 무용수들이 김시습의 ‘탐매(探梅)’를 단아한 시조 창으로 읊으면 아홉명의 여성 무용수들의 군무는 혹한을 뚫고 고고하게 피어나는 매화의 모습으로 살아난다. 국립무용단의 89회 정기공연인 컨템포러리 댄스 ‘매창-매화, 창에 어리다’가 무대에 오른다. ‘바다’ ‘비어있는 들’에 이어 세번째 대형 창작춤이다. 네 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이번 작품은 시와 글과 그림이 혼재된 분위기에 소리와 춤이 어우러진다. 첫번째 이야기 ‘삭풍은 가지 끝에’는 30여명의 남녀 무용수들의 표정연기와 절제된 움직임으로 민초들의 삶의 흔적을 표현한다. 뒤이어 무용수 개개인들의 테크닉이 돋보이는 두번째 이야기인 ‘설중한월(雪中寒月)’이 전혀 다른 색깔로 펼쳐진다. 한국춤과 발레의 동작을 연상시키는 춤사위가 펼쳐지는 세번째 이야기 ‘새순 돋다’에서는 정갈하고 지순한 매화의 이미지가 그대로 나타난다. 마지막 하이라이트에서는 영상과 춤이 뒤섞여 인고의 시간을 거쳐 한 떨기 매화로 피어나는 ‘초춘지의(初春之義)’로 마무리 한다. 전반부에는 거칠고 동적인 기운으로 북풍한설을 이겨낸 매화의 모습이 연출되며 후반부에는 새순이 돋아나듯 정갈한 분위기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시조창, 국악기, 바이올린 등 현악기가 혼재한 라이브 연주는 장면과 장면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드라마도 살리는 역할을 한다. 서예가가 직접 무대에 올라 한편의 시를 써내려 가는 것도 색다른 볼거리. 서예가 조성주가 마지막에 등장해 써 내려가는 일필휘지의 필선이 무용수의 몸짓과 조화를 이룬다. 또 수묵화 등이 영상으로 펼쳐지고 문살과 창호지 등의 무대미술이 무용수들의 춤사위와 함께 무대에 올라 한국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안무를 맡은 김현자 예술감독은 “모질고 힘든 세월을 이겨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높고 깊은 아름다움의 세계가 매화 한 송이에 다 담겨있다. 매화를 통해 순환의 원리,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작품소개를 대신했다. 17일부터 1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2280-4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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