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전자상가에 여성 사장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전자제품 유통 분야를 남성들의 전유물로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시대착오다. 전자제품 유통시장의 메카로 자리잡은 용산 전자상가에서 여사장들이 운영하는 매장은 대부분 알짜배기로 평가된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여사장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그 이전만해도 경리나 단순 사무관리를 맡아보는 여성들은 많았지만 직접 자신의 매장을 운영하는 여사장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용산 전자상가의 여사장들은 특유의 싹싹함과 성실, 신뢰 등을 무기로 단골 고객을 늘려나가고 있다.
특히 '여사장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믿을 만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데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여사장들은 한번 찾아온 고객들을 잘 관리해 단골로 만드는데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용산 나진상가상우회의 윤기병회장은 "현재 나진 전자월드 컴퓨터상가 매장 중 약 10%정도는 여사장이 운영하는 매장"이라며 "이중에는 내실을 다지기 위해 부부가 공동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전자상가에서 여사장들이 늘어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남편이 전업 주부들을 매장에 나오게 해 자금 및 재고 관리 업무를 맡기면서 여사장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
사실 소규모 점포에서는 거액의 횡령 사고가 일어나면 즉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런 설명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제품의 특성도 여사장들이 늘어날 수 있는 이유로 지적된다. 덩치가 큰 제품이 아니라 컴퓨터와 주변기기 및 소모품 등을 주로 판매하기 때문에 여성들도 매장을 운영하기 쉬운 것으로 평가된다.
나진전자월드 9동 기묘컴퓨터(kimyo.co.kr)의 신순덕 사장은 전산소모품 분야에서는 알아주는 베테랑이다.
기묘컴퓨터는 프린터 토너 및 잉크 카트리지 전문매장이다. 신 사장은 자본금 2000만원으로 기묘컴퓨터를 시작했지만 지난해에는 무려 2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신 사장은 특별한 사후관리가 불필요한 전산소모품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출발할 때부터 전산소모품만을 취급했다.
더욱이 단기간에 전동식 타자기에서 컴퓨터로 사무환경이 바뀌면서 프린터용 토너 등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사업은 순항을 거듭했다.
그의 사업 성공을 그저 행운 때문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신 사장은 "비즈니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신용'이라고 생각했다"며 "거래 시 현금결재를 철저하게 준수한데다 자신 있는 아이템만을 취급한 것이 오늘의 기묘컴퓨터를 만든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대한 CNS의 최은순사장도 이제 나진상가에서는 터줏대감으로 통한다. 지난 5년간 hp총판 소모품매장을 운영해 왔다.
그는 "컴퓨터 소모품은 IT산업이 성장할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품목으로 올해는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으로까지 거래선을 넓혀 매출을 크게 확대할 계획"이라고 야심을 밝혔다.
현재 용산상가의 여사장들 중 절반은 전업주부 출신이다.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판매하는 나진상가 17동 기대정보의 조정숙사장, 19동 조립PC 및 브라더프린터 대리점인 동림시스템(www.coolpc.co.kr)의 박은희사장, 컴퓨터주변기기 및 네트워크전문 매장인 선인상가 동방 IT의 박순진 사장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 특히 이들이 경영에 뛰어든 후부터 매출액이 남편 혼자 매장을 운영할 때 보다 크게 늘어 부부가 뛰어난 팀워크를 발휘한 경우로 평가되기도 한다.
박순진 사장이 경영하는 동방IT는 지난해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동방IT는 현재 전국적으로 거래하는 매장만 해도 200여개 이상에 달한다.
그는 "처음에는 컴퓨터가 뭔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네트워크 공사도 어렵지 않게 지시할 수 있게 됐다"며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한계도 많지만 '성실'로 이를 극복해 왔다"고 말했다.
동림시스템의 박은희 사장은 나진상가에 출현한 최초의 여사장. 박 사장은 이달말부터 판매에 들어갈 브라더 레이저프린터의 신모델에 대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는 91년 브라더프린터의 국내 총판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컴퓨터 유통분야에 뛰어들었다. 현재 동림시스템의 매출 중 80%가 여기서 나온다. 매출이 크게 늘어나자 박 사장은 PC유통분야로 진출했다.
그는 "여자이기 때문에 겪은 불이익은 별로 없지만 기술적인 부문에는 한계를 느낀다"며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는 늘 배우는 자세로 임한다"고 말했다.
장선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