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골프로 20억 날리고 500만원 벌금까지

법원 "상습도박 공범일뿐 사기도박 피해자 아니다"

내기 골프에 빠져 20억원이나 잃은 여성 아마추어 골퍼가 상습도박 혐의로 기소되자 자신은 사기 사건의 피해자일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8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건설업을 하며 큰돈을 번 A(57ㆍ여)씨가 불행의 늪으로 빠져든 것은 골프를 막 시작한 2003년 9월부터다. 당시 백화점 골프용품 매장에서 골프에 상당한 식견이 있는 B(60)씨를 우연히 알게 된 것이 화근이 됐다. 70타 수준의 뛰어난 실력을 갖춘 B씨는 A씨에게 골프를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했고 두 사람은 연습장과 골프장을 함께 다니며 가까워졌다. A씨가 라운딩에 익숙해질 무렵인 2004년 5월 B씨는 아는 사람이라며 C(64)씨를 소개해주고 내기 골프를 해 보라고 부추겼다. A씨는 처음에는 주저했으나 "잃으면 C씨보다 실력이 나은 내가 다시 따 주겠다"는 B씨의 감언이설에 넘어가고 말았다. 내기는 초보인 A씨는 53타, C씨는 44타를 목표로 정해놓고 9홀을 목표 타수 안에 도는 사람이 이기고, 둘 다 목표를 달성하면 비기는 속칭 `핸디치기' 방식으로 이뤄졌다. 2006년 8월까지 무려 2년 넘게 내기 골프는 계속됐고 18홀을 기준으로 판돈이 1억∼2억원 씩이나 하다보니 A씨는 20∼30차례에 걸쳐 무려 20억원을 잃었다. A씨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기골프 내내 곁에서 점수를 계산해 주는 등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B씨마저 "돈을 주면 C씨와 골프를 쳐서 잃은 돈을 따주겠다"고 말해놓고 10억원을 받아챙겼다. 게다가 B씨는 20억원을 딴 C씨로부터 자신 몰래 수억원을 받아간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됐다. A씨는 뒤늦게 두 사람을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B씨는 사기 및 상습도박 방조죄, C씨는 상습도박죄로 각각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은 그러나 피해자격인 A씨도 내기 도박에 동참한 것으로 보고 기소했고 A씨는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자 항소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조용준 부장판사) 역시 A씨에게 1심과 같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아마추어 골퍼의 기량을 객관적으로 따지기 어려운데다 C씨의 실력과 상관없이 A씨가 이기거나 비길 수도 있었던 점, 도박이 2년 사이 여러 차례 일어난 점 등을 고려하면 C씨가 사기도박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도박죄에서 요구하는 우연이란 당사자 사이에 결과를 확실히 예견하거나 자유로이 지배할 수 없는 성질을 가리키는 것으로 선수들의 기량을 고려해도 골프 경기의 결과를 확실히 예견할 수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A씨가 내기골프에서 거액을 잃었음에도 사기도박의 피해자가 아니라 상습도박의 공범인 만큼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A씨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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