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I-월드] 은행, 다시 태어나자한국의 은행은 과연 은행인가, 아니면 전당포인가.
최근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출입이 잦았던 어느 벤처기업 사장이 가슴에 품은 의문이다. 고객의 사업내용이나 장래성 같은 것은 안중에 없다. 오직 담보 담보 담보, 담보만 있으면 고객이 살인범이든 마약 밀매업자든 따지지 않을 것 같은 자세로 담보만 요구했다. 심지어 기술신용보증기금이 발행한 보증서를 가져 온 벤처기업 사장에게 보증서 외의 담보를 요구하는 전근대적인 은행이 있을 정도다.
그 현대화 안된 은행원들이 삼복 더위에 거리로 나선 사태는 금융파업 여부에 상관없이 우리나라 은행을 되생각하게 만든다. 마치 전쟁을 하듯, 또는 인권투쟁을 하듯 거리에 나선 은행노조원들을 보는 국민의 시선과 언론의 관점이 의약대란때 보다 싸늘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외국의 언론조차 『자유를 위해 거리로 달려나왔던 한국의 화이트칼라들이 이제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일을 버리고 거리로 뛰어나왔다』고 대국민 서비스보다 자신의 몫을 챙기려는 한국의 은행원들을 비꼬았다.
IMF가 끝났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잠재적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일반국민보다는 은행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또 정부가 부실은행 구조를 위해 풀은 10조원 넘는 돈이 결국은 국민의 부담으로 온다는 것도 은행원이 모르면 누가 알 것인가. IMF로 일반 기업의 샐러리맨들이 월급도 못 받고 거리로 쫓겨났을 때 그래도 퇴직은행원들은 1년치 급여를 받았고, 어떤 부실은행은 퇴직금 액수가 엄청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은행원이면 보통 5,000만원까지 무이자 대출을 받는 데 대해서도 국민들은 이해가 잘 안된다.
은행의 행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정경유착을 핑계로 이리저리 부패해 있을 때 과연 은행 노조가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까. 아니면 윗녘의 부패를 알면서도, 이를 묵인하는 대가로 대우 인상이나 요구하지 않았던가. 어느 은행 노조가 이러한 정경유착의 시정을 요구한 일이 있었던가. 하다 못해 양심선언을 통한 정경유착의 폭로라도 있었던가.
그렇다면 오늘날 은행 부실을 불러온 이유 중의 하나인 정경유착이 은행 간부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노조가 책임 질 부분은 없는가.
미국의 시티뱅크는 LA대화재 때, 재산을 불에 날려 담보가 있을리 없는 피해자들에게 앞장서서 대출을 하여 그들을 도왔다. 뱅크 오프 아메리카는 1년 후에 석방될 담보없는 모범수들에게 대출을 하여 그들의 갱생을 도왔다.
앞선 은행들의 앞선 마케팅은 장사속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미담이다. 운명이 버린 사람들을, 하늘이나 사회가 버린 사람들을 은행이 껴안은 것이다. 한국에선 아마 사회가 껴안으려는 사람들을 은행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국민들이 하고 있다면 큰일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에서 자금배정을 받고 은행을 몇 번 드나들어본 벤처사업가들은 이번 금융대란에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은행으로선 다시 태어날 좋은 기회가 지금 와 있다. 참으로 빅찬스다.
/코리아커뮤니케이션즈 대표입력시간 2000/07/1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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