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두산비자금 사건의 교훈

[데스크 칼럼] 두산비자금 사건의 교훈 조희제 hjcho@sed.co.kr '형제는 남이 되는 출발'이라는 일본의 속담이 있다. 이 말은 형제도 부모밑에 있을 때 이야기지 결혼해 자식을 낳고 생활인으로 살아가면 자연히 멀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애가 강조되는 형제지만 독립된 인간으로 서로 존중하고 신뢰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두산비자금 사태를 보고 있으면 이말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서민들로서는 돈많고 명예도 높은 집안이 어떻게 저렇게 싸울 수가 있나라고 혀를 찰 일이다. 하지만 재발 총수 일가의 인간사도 따지고 보면 돈 앞에는 부모형제도 보이지 않는다는 민초들의 인생사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형제의 난'이라는 두산가내 투서사건은 사회지도층 인사, 재벌가 재산분쟁 등등 술판의 좋은 안주거리가 될 여러가지 조건들을 갖춘 사건이다. 결국 누가 그 책임을 짊어지고 구속되는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검찰이 고심에 고심을 하다 이들 두산가 형제들을 불구속 기소키로 결론지었다. 이번에 불구속된 두산가 3세 형제는 박용성 전 두산그룹회장 등을 포함해 4명이다. 이들은 위장계열사를 통해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만든 혐의를 받고 있다. 말하자면 회사돈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빼내서 내 돈처럼 쓴 사실을 스스로 자복한 꼴이다. 그런데 그 비자금 액수가 커서 그동안의 전례를 따지면 구속이 불가피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두산가 형제들을 불구속했으며 그 이유로 '국익'을 내세웠다. 박용성 전회장이 사실상 외교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인사로서 동계올림픽 유치 및 국제올림픽 위원회(IOC)등의 현안이 있어 국익에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검찰이 불구속 결정을 내리자 재계는 "기업 활동의 위축을 막았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재벌에 약한 검찰의 모습을 또다시 드러냈다며 비난하고 있다. 검찰의 결정은 원칙에 살고 원칙에 죽는다는 검찰 조직 생리상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부의 반발과 외부의 비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사회가 좌우로 나뉘어져 갑론을박했던 강정구교수의 사건에서도 검찰은 원칙론을 지켜야 한다며 검찰총장이 스스로 옷을 벗지 않았던가. 검찰은 범죄혐의자를 구속기소할 때 그 이유로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를 내세운다. 특히 지도층 인사나 재벌의 비리사건이나 사상범사건에 있어서는 죄질에 관계없이 또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여부에 구애되지 않고 구속수사의 원칙을 적용해 왔다. 일각에서는 두산사건이후 검찰이 인신구속에 보다 신중해지지 않을까 하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전례에 예외를 적용한 때문이다. 검찰은 그만큼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형제의 난을 겪은 기업은 비단 두산그룹만이 아니다. 재산분배 문제가 물밑에서 벌어져 조용히 끝난 경우도 있지만 이전투구끝에 법정까지 가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양태는 다를지 몰라도 우리사회의 재벌들의 재산분쟁은 앓고 지나가는 홍역처럼 반복돼왔다. 한국재벌들의 자식에 대한 부의 상속은 좀 유별나다. 특히 부의 상속과 경영권 승계를 동일시하는 경향은 다른 어떤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경영인으로서 검증과정도 없이 단순히 내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로 기업을 승계시켜 왔던게 기업인들의 모습이었다. 그런 결과 기업, 특히 재벌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최근 들어 더욱 나빠졌다. 반기업정서는 기업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한국재벌들도 부를 상속할 때 법적인 절차 못지 않게 사회로부터 도의적인 공인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부의 상속이나 형제간 재산 분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제 두산그룹이 할 일은 두산인들 모두가 다짐하듯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존경받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국민정서를 거스르며 내린 검찰의 결정에 대한 응분의 의무이다. 입력시간 : 2005/11/1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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