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 '물가'보다 '경기'로 무게 이동

경기 부정적 시각 지난달보다 발언수위 높여
물가오름세는 하반기 갈수록 점차 둔화 전망
한미 금리차등 고려 내달 전격인하 가능성도


한국은행이 금리인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세계경기 침체의 여파로 국내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더욱 확산되자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고민하던 한은도 결국 통화정책의 방향을 결정한 것이다. 채권시장도 이에 화답하듯 이날 금리가 크게 하락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물가오름세가 정점에서 꺾이고 글로벌 경기침체가 본격화하는 2ㆍ4분기 초쯤 한은이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성태 한은 총재의 경기둔화에 대한 발언수위가 예상보다 강해 오는 3월 전격적인 인하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경기 하방 리스크 커졌다”=이날 금융통화위원회 발표문과 이 총재의 발언 중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단연 ‘국내 경기 둔화 가능성’ 언급이다. 지난 1월과 달리 금통위 결정문에는 ‘경기에 대한 하방 리스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부정적인 경기시각을 드러냈다.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경제의 침체 가능성으로 세계경제의 성장둔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이는 경기 불확실성만 언급했던 1월 경기진단에서 한발 더 나아간 표현으로 미국 등 세계경기 침체가 가능성에서 현실화로 바뀌고 있고 우리도 경기둔화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공식 표명한 것이다. 이 총재 역시 기자간담회에서 지난달과 달리 ‘경기’에 대한 언급을 많이 했고 강도도 높았다. 이 총재는 앞으로 실물 쪽 전망과 관련, “미국ㆍ유럽ㆍ일본ㆍ중국 등의 경제성장 전망 수치가 몇 달 전보다 낮아졌다”며 “우리도 경제성장이 내려갈 가능성이 커졌다”고 언급했다. 이는 지난달보다 경기둔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졌다는 의미. 이 총재가 몇 달 뒤의 상황까지 감안해 표현하는 것을 볼 때 앞으로의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가오름세 경계심리는 완화돼=경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짙어진 반면 물가상승세에 대한 수위가 ‘톤 다운’됐다. 금통위는 물가와 관련, “고유가의 영향 등으로 상승세가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부동산가격은 오름세가 제한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소비자물가는 당초 전망대로 오름세가 하반기로 가면서 점차 둔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의 강한 물가상승세가 우려되지만 한은의 예상경로대로 움직일 것으로 보여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속내다. 이 총재 또한 “올 상반기 중에는 물가운용목표 상한선인 3.5%에 가까운 꽤 높은 물가상승률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하반기로 가면 조금씩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내려간다면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도 그만큼 낮아질 수 있다며 물가오름세가 시간이 갈수록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의 물가오름세가 유가 및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초래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중국ㆍ인도 등 신흥시장의 경제성장이 주춤해지면 원자재 가격도 떨어지고 결국 국내 수입물가에도 영향을 미쳐 소비자물가가 점차 안정을 찾아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기정사실화된 금리인하=이 같은 분위기를 종합해보면 결국 한은이 금리인하 쪽으로 통화정책 방향을 고쳐 잡고 수순에 따라 시장에 시그널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하 테이프’를 끊은 셈이다. 시장관계자들 또한 이 총재의 발언 등을 감안해볼 때 한은이 물가상승보다는 경기둔화 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하면서 ‘명분 찾기’에 나섰고 조만간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윤여삼 대우증권 연구원은 “이 총재의 발언은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감을 완전하게 충족시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금리인하 방향성을 잡고 시그널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며 “인플레가 우려되지만 미국 경기 침체, 한미 금리차, 글로벌 금리인하 흐름 등을 고려해볼 때 이제는 금리동결을 지속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총재의 경기 우려 발언이 예상보다 강해 다음달에 전격적 금리인하 가능성도 예상된다며 늦어도 2ㆍ4분기 초쯤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물가오름세가 강하고 유럽중앙은행의 금리동결 등을 감안해 한은이 속도조절에 나선 것 같다”며 “하지만 다음달 미국의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아 한은의 금리인하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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