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명중 한명꼴' 한국 소녀 일 냈다

[Culture & Life] 자서전 낸 발레리나 강수진
평범한 삶 열정으로 사는게 특별한 삶… 아직 은퇴 생각 없어요



'10만명중 한명꼴' 한국 소녀 일 냈다
[Culture & Life] 자서전 낸 발레리나 강수진평범한 삶 열정으로 사는게 특별한 삶… 아직 은퇴 생각 없어요

정민정기자 jminj@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9살부터 고전 무용하다 중 2때 발레 입문지금까지 새벽 5시~밤 11시 빡빡한 일정최선 다하는 하루하루가 오늘의 나 만들어내달부터 '크라바트' '오텔로' 등 유럽 공연내년엔 '나비부인'으로 국내 관객 찾아뵐 것


1985년 동양인 최초로 로잔 국제 무용콩쿠르 우승,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최연소 입단, 1999년 33세에 세계 최고 무용수에게 수여되는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수상.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 강수진(46ㆍ사진) 씨에게는 '최초' 혹은 '최고'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다닌다.

최근 생애 첫 자서전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인플루엔셜)' 발간을 기념해 고국을 방문한 강 씨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만났다. 우선 자서전 제목에 담긴 의미에 대해 물었다. "누구나 특별한 삶을 꿈꾸지만 사실 특별한 삶이란 것은 없습니다. 평범한 삶을 특별한 열정으로 살면 그것이 바로 특별한 삶이 되는 것이거든요. 하루하루가 가장 중요하고, 열심히 살아간 오늘이 모여 특별한 내일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세계적인 프리마돈나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찬사는 바로 "강수진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하루하루를 반복해 대단한 하루를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한다.

◇수줍음 많은 소녀, 발레의 세계로 뛰어들다.

1973년 겨울 서울 휘경동의 한 시장, 7세의 어린 아이가 땅만 바라보며 걸었다. 뭐가 부끄러운지 엄마의 치맛자락만 잡고 간신히 걸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잡고 있는 치맛자락의 주인이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인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엄마만 연신 불렀다.

지금은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자신 있게 춤사위를 펼쳐 보이는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강수진의 어릴 적 모습이다. 유난히 수줍음 많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던 소녀 강수진이 처음에 인연을 맺은 것은 발레가 아니라 한국 고전 무용이었다. 9세에 고전 무용을 시작했고, 발레에 본격 입문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으니 유치원생 시절부터 발레를 시작한 대부분의 무용수에 비해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였다.

발레를 취미로 삼았던 평범한 소녀에서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도약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운명처럼 찾아왔다. 1981년 3월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의 교장인 마리카 베소브라소바가 그녀가 다니고 있던 선화예술학교를 방문한 것이다. 그녀는 루돌프 누레예프, 보리스 알렉산더 고두노프 등 당대 기라성 같은 발레 영웅을 길러낸 유명 인사였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자그마한 동양인 소녀는 발레를 제대로 배우지 않아 다른 아이들에 비해 테크닉이나 기본기는 뒤쳐졌지만 타고난 감수성과 표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녀는 강수진의 부모에게 "수진은 10만 명의 발레리나 중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아이"라고 설득했고 강수진은 15세란 어린 나이에 모나코로 유학을 떠나게 됐다.

◇최고의 전성기,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다.

1999년은 강수진에게 특별한 해였다.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동양인 최초로 21세의 최연소 무용수로 입단, 10년간의 군무 생활 끝에 1996년 수석 무용수로 발탁됐다. 더군다나 1999년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춘희'를 발레로 재해석한 '까멜리아 레이디'란 작품으로 동양인 최초로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했다. 발레계의 노벨상,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며 전세계 내로라 하는 무용수라면 꼭 한 번 받기를 소망하는 그런 상이었다. 그 해에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의 별이자 한국의 별, 그리고 세계 무용계의 별로 떠올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녀는 병원 진료를 받던 중에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된다. 정강이뼈 스트레스성 골절로 인해 1년 이상 발레를 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요. 단 한 번도 발레 외에 다른 직업을 가진 나를 상상해본 적도 없었거든요.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억울하고 힘들었지요."

절망에 빠져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그녀에게 남편인 툰치는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쉬고 나면 1년 후에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50%의 희망이 있지만, 지금 계속 춤을 추면 앞으로 평생 춤을 추지 못하게 될지도 몰라."

그 말을 듣자 강수진은 (춤을 추겠다는 욕심을) 내려 놓아야 자신이 살고, 자신의 춤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포기가 아니라 '내려 놓음'을 선택하기로 했어요. 발레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무대를 떠나 있으려니 마음이 무거웠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삶의 긴장감은 어느 때보다 팽팽해지면서 하루하루를 잘 버텨냈던 것 같아요."

결국 1년여의 재활을 끝내고 무대에 섰던 발레리나 강수진은 관객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지금은 40세가 훌쩍 넘은, 발레리나로서는 벌써 은퇴하고도 남았을 나이에도 현역 무용수로 사랑 받고 있다.

◇평범한 하루가 만들어낸 기적

선화예술학교 재학 시절 강수진의 평균 기상 시간은 4시 30분이었다. 어머니가 챙겨준 도시락을 들고 남산도서관에 도착하면 새벽 5시. 그날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예습한 후 등교해 수업을 받고 저녁 11시까지 학교에 남아 발레를 연습했다. "발레와 공부 모두 잘하고 싶은데 발레 연습을 하면 자연히 공부에 할애하는 시간이 적어질 수 밖에 없잖아요. 그렇다면 남들이 일어나지 않는 아침시간과 잠자리에 든 저녁 시간을 내 시간으로 만들 수 밖에 없었어요."

10대 소녀가 소화하기 힘들 것 같은 일정을 그녀는 온몸으로 감당하며 '인생을 두 배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터득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된 그녀의 '하루 경영'은 모나코 유학 시절이나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입단 후, 그리고 최고의 무용수 반열에 오른 지금도 거의 변함이 없었다. 요즘도 그는 새벽 5시 시계 알람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2시간 동안 아침 트레이닝을 하고 극장으로 가서 밤 11시까지 연습에 몰두한다. 그녀의 평균 수면 시간은 4시간. 2~3시간 밖에 못 자는 날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그녀가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평범한 하루하루가 모여서 대단한 내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가 가진 모든 업적, 성공담, 주변의 찬사는 모두 그러한 '일상적 반복이 빚어낸 위대한 산물'이예요. '오늘 못했으니까 내일 하면 될 거야'라는 식으로 나의 나태한 오늘을 내일로 미루기 시작할 때 그런 (게으른) 하루들이 모이고 모여 그 사람의 예술 인생에 종지부를 찍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은 지금 이 순간이 생의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여기고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비로소 얻는다고 믿는다. "어제보다 1분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더 뛴 그 하루하루가 주는 그 만족감은 99%의 잔에 1.1%를 더 채워 그 잔을 꽉 채우고 넘쳐 흐르게 만들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어요."

◇강수진의 내일, 그리고 한국

그는 오는 3월부터 슈투트가르트에서 독일 젊은 안무가의 신작인 '크라바트'와 발레계 거장 존 노이마이어가 안무한 '오텔로' 등에 출연한다. 그리고 10월에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안무가 엔리케 가사 발가가 강 씨를 염두에 두고 새롭게 안무를 만들고 있는 '나비부인'에서 주인공 초초상을 연기한다. 10월 무대를 위해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숨가쁘게 바쁜 나날을 보내야 한다. 한국 무대 일정을 묻는 질문에 그는 "올해는 유럽에서의 공연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한국 무대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내년께 '나비부인'으로 우리나라 관객들을 찾아 뵐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하루하루를 오늘처럼 살아가는 강수진에게 내일의 계획을 묻는 것은 우문(愚問)일 뿐이지만 은퇴 이후 그녀의 삶에 대한 호기심은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아무 것도 정한 것이 없어요. 예전에는 오히려 내가 나이가 들면 무엇을 할까 생각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하루하루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살아가는 데 집중하고 있거든요. 물론 평생을 토슈즈를 신고 무대에서 살았던 만큼 발레와 관련된 무엇인가를 하고 있겠지요. 다만 나한테 가장 적합하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요. 아마 그런 선택에는 우리나라에서 후배들을 키우는 일도 포함될 거라고 생각해요."

세계적인 프리마돈나가 언젠가 고국의 후배들을 또 한 명의 위대한 무용수로 키울 날이 멀지 않은 듯 하다.

She is… ▲1967년 4월 24일 서울 출생 ▲1974년 경희국민학교 입학 ▲1975년 리틀엔젤스 예술단 입단 ▲1980년 선화예술중학교 입학 ▲1982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입학 ▲1985년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 1위 입상(동양인 최초)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입단(동양인 최초, 당시 21세로 최연소) ▲1990년 대통령 표창 ▲1993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솔리스트로 데뷔 ▲1995년 발레리나의 최고 영예인 시즌 오프닝 공연 주역 ▲199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 무용수 ▲1999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 ‘브누아 드라 당스’의 최고 여성 무용수로 선정 ▲1999년 대한민국 보관 문화훈장 ▲2007년 독일 뷔르템베르크 궁정무용가 칭호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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