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의 꽃' 국장이 흔들린다

지난해 말 고위직인사를 단행한 한 중앙부처의 C국장은 인사를 앞두고 산하 연구기관 파견을 자원했다.행정고시 출신으로 20여년 공직생활 끝에 흔히 말로 잘나가는 핵심국장자리를 차지했던 그가 한직인 연구기관 파견을 자원하자 동료들은 물론, 관련단체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요즘같이 되는 일도 없고 공무원이라면 개혁대상, 심지어 「이적단체시」하는 풍토속에서 공직생활을 계속해야 할 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다』며 『한 1년 쉬면서 새로운 인생을 모색하고 싶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관료의 꽃」으로 불리는 국장(2급·3급)들이 요즘 C국장처럼 흔들리고 있다. 민간전문가 계약직 공무원 채용, 연봉제 도입 등 정부고위직 인사에 대한 개혁작업이 추진되면서 업무보다는 개인의 장래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하고 정부의 개혁에 대해서도 냉소적인 반응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이란 직업의 최고 메리트로 꼽히던 「신분보장」과 「권위」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재정경제부 등 일부 부처 국장급 이상 인사에서 「옷벗는」 사람들이 예년보다 크게 늘자 다른 부처에서도 일손을 놓은 채 인사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경부의 경우 행시10회 출신이 차관으로 임명되자 고시동기들이 모두 방출됐고 14회출신이 1급으로 발탁되자 14회이상의 고참국장 3명은 국세심판소로 밀려나 사실상 퇴진의 길로 들어섰다. 또 승진을 앞둔 수석국장 C씨는 공무원교육원에 파견되고 본부국장을 거쳐 교육갔던 P씨는 산하청으로 전출돼 같은 처지에 놓였다. 과천관가에는 이번 인사와 관련해 「43년생, 44년생 이상 고참국장들은 모두 퇴진시킨다더라」라는 식의 소문이 무성하다. 중앙부처 국장들은 특히 약 800개의 자리 가운데 3분의 1정도인 200개 내외를 개방형으로 지정, 계약제 임용이 가능토록 한다는 정부방침에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오는 3월 나올 정부경영진단 결과에 따라 정부기구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경우 상당수의 자리가 없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관련해 중앙부처의 한 국장은 『공직사회에 민간인 전문가를 영입,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정부의 방침에는 찬성한다』며 『그러나 이 제도가 진짜 전문가가 아니라 정치권 인사들의 자리만들어주기로 변질되면 큰 후유증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직에 대한 권위도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진 것도 국장들을 흔들리게 하는 큰 이유다. 한 경제부처의 B모국장은 『지난해 12월 거의 매일 국회로 출근했지만 한 것이라고는 복도에 신문깔고 앉아 대기하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뿐이었다』며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이 갈수록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침울한 분위기속에 최근 환경부 폐기물자원국장이 관련업계의 협박에 시달리다 못해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자 과천 관가 공무원들사이에서는 공직의 권위가 껍데기만 남았다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격변기에는 가만히 있는게 역시 최고』 냉소적인 반응까지 보이고 있는 상태다. 국장은 행정고시에 합격해 5급사무관으로 공직사회에 발을 디뎌 보통 20년이상 공무원생활을 해야 오를 수는 자리다. 그래서 국장승진은 군대에서 별을 다는 것에 비유될만큼 어렵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런만큼 큰 영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무적으로도 국가의 모든 정책이 그들의 머리속에서 입안되고 손끝을 통해 실행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직사회의 허리 역할을 하는 국장들이 마음을 잡지못하고 흔들리는 것은 정책의 효율성 저하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이학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