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산책] '선정성'과 '음란성'의 차이

MBC 수목 미니시리즈 ‘여우야 뭐하니’와 케이블 오락채널 tvN의 시추에이션 드라마 ‘하이에나’ 방송을 계기로 TV 드라마의 선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여우야 뭐하니’와 ‘하이에나’의 선정성 문제는 TV 드라마에서 다룰 수 있는 소재와 표현의 수위를 둘러싼 논쟁이다. 케이블방송과 지상파방송의 차이만큼 청춘남녀의 성적 욕망 자체에 집중한 ‘하이에나’와 우리가 애써 숨기려 했던 성을 소재로 사랑에 다가서려는 ‘여우야 뭐하니’를 같은 등급에 놓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방송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과 윤리를 따라야 하는 것은 이들 드라마가 처해 있는 공통의 현실이다. TV 드라마의 선정성이 문제되는 것은 극적 상황이나 장면이 우리 사회의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소재적인 측면과 부분적인 장면 연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선정성 논란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TV 드라마가 영상예술로서 제대로 자리매김하기 어렵다. 따라서 TV 드라마가 영상예술시대의 대표적인 극예술 양식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선정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선정성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감정이나 욕정을 북돋워 일으키는 성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정성을 이야기할 때 주목하는 부분은 ‘욕정(欲情)’이다. 그래서 선정적인 것을 야한 것과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정성의 사전적 정의에서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북돋다’라는 타동사이다. 무언가 외부의 자극을 받고 감정이 과잉돼 불편해지는 것이 선정적인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선정성은 대부분 음란성과 같은 의미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성적(性的)인 것이 선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성(性)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태도가 선정성을 오해하게 만든 것이다. 남성성인잡지 ‘쎄시봉’의 노처녀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산부인과와 비뇨기과를 주요 배경으로 설정한 ‘여우야 뭐하니’에서 성(性)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같은 극적 상황 설정을 통해 ‘여우야 뭐하니’는 그동안 연애와 결혼을 소재로 한 TV 드라마들이 주로 사랑에 대한 환상을 조장했던 것과 달리 자궁과 성에 대한 환상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주목할 필요가 있는 새로운 드라마이다. 다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틀에 박힌 연상연하 커플 관계에만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로서 TV 드라마의 매력이 살아나지 않고, 그래서 애초 기대와 달리 제 2의 ‘내 이름은 김삼순’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처럼 선정성과 별로 상관없는 ‘여우야 뭐하니’를 두고 자꾸 선정성을 문제 삼는 것은 우리가 마음속으로만 상상하고 애써 숨기려 했던 것들을 극중 주인공의 상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TV 드라마를 보면서 불편한 것은 솔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하지 않고 자꾸 숨기려드니 문제다. 숨기려 했던 것들이 공공연히 드러나는 순간, 민망해지는 것이다. ‘여우야 뭐하니’를 둘러싼 선정성 시비는 그동안 숨겨왔던 성에 대한 담론을 공론화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다.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장면, 성인잡지 제작을 둘러싼 극적 상황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릴 필요가 없다. 극중 주인공 고병희가 의학실험용 자궁 모형을 들고 자신의 몸에 대한 무지를 반성하는 장면을 선정적이라거나 음란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장면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육체의 한 부분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말 선정적인 것은 성적(性的)인 것이 아니라,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극적 상황에 맞지 않는 장면 연출을 통해 불필요한 감정의 과잉을 유발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