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제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방향을 바꿀 것인가, 위기에 대한 책임모면의 미봉인가.재정경제원은 경제가 급속히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뒷짐을 지고 방관자로 서 있다가 뒤늦게 부랴부랴 직접개입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금융불안의 근본원인인 기아사태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강경식 부총리는 21일 은행장들과 긴급조찬 간담회를 갖고 은행과 종금사에 사실상 무제한 지원을 약속하면서 기업어음의 만기를 연장, 흑자 도산을 막아달라고 주문했다. 돈을 풀어서라도 부도사태를 막겠다는 뜻이다.
부도사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며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던 시장논리를 꺾고 개입으로 전환한 것으로 해석된다.
강부총리의 시장주의가 대기업이 줄줄이 쓰러지는 현실 상황에서 무력화되었고 끝내는 정책실패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시장논리가 경제를 파국 위기로 몰아 넣었기 때문이다. 한보 삼미 진로 대농에 이어 기아사태가 잇달아 터졌다. 계속해서 쌍방울 태일정밀 뉴코아까지 도산위기에 처했다. 금융경색이 심화되고 두차례의 증시대책에도 주가는 폭락하며 환율은 급등했다. 부도공포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외환위기, 금융대란이 현실로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이다.
시장논리를 고집하기에는 경제가 중증에 빠져있다. 서투른 논리로 버티기에는 병이 너무 깊었고 뒷짐을 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병세가 더 악화되면 되었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있다.
구조조정이나 시장원리도 필요하겠지만 빈사의 경제를 살려놓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실기했다. 사후약방문이다. 실기한 대책은 효과가 반감하는 법이다. 더욱이 금융불안의 근본원인인 기아문제는 외면했다. 기아에 대해서만은 시장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서 책임을 은행에 떠 넘기고 있다. 은행은 정부의 눈치나 보고 직 간접 지시에 따랐을 뿐인데도 정부의 뜻대로 되지 않자 끝내는 은행책임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정부정책이 갈팡질팡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기아사태가 해결되지 않고선 금융시장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부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알면서도 안한다면 직무유기다.
부실기업에 협조융자를 하라, 화의를 받아들이라 하면서도 유독 기아에 대해서만은 자금지원도 안되고 화의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본심을 이해할 수 없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깊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지어 강부총리와 김선홍 회장이 책임을 지고 동반퇴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금융위기의 핵심인 기아사태 해결없이는 어떤 대책도 효험을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불안은 경제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