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석유 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미국이 최근의 저유가 전쟁에서 각각 '버티기'에 들어가며 장기전 태세를 굳히고 있다. 석유패권을 둘러싼 치킨게임에서 먼저 발을 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양측의 호언장담 속에 저유가 양상이 앞으로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비잔 남다르 장게네 이란 석유장관은 최근 석유부 홈페이지를 통해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OPEC 국가들 사이에서 협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열매를 맺지 못했으며 감산 계획도 없다"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추가 만남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계속된 유가 하락에 각국의 재정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지만 감산 등 인위적 가격조정 계획은 당분간 없다는 의미다.
이란은 최근 저유가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맞은 베네수엘라 등과 함께 OPEC의 감산 필요성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국가로 미국 셰일 업계를 견제하기 위해 OPEC의 산유량 쿼터 유지를 주도하고 있는 사우디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이런 가운데 나온 장게네 장관의 발언은 원유 감산을 둘러싼 사우디와의 대화가 실패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장게네 장관은 국가예산을 감안한 적정 유가수준은 배럴당 최소 72달러선이 돼야 한다면서도 "유가가 25달러 밑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이란 석유산업에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이란 국영 파르스통신은 전했다.
사우디도 아직 느긋한 입장이다. 사우디 석유장관 자문역을 지낸 모함메드 알사반은 이날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의 국가 금융자산이 약 3조리얄(886조원)에 이른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사우디는 지금의 저유가를 최소한 8년간 버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감산은 없다"고 버티는 OPEC 국가들에 미국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최근 손익분기점 아래로 떨어진 유가 때문에 미국 셰일 업체가 고사 위기에 몰려 있음에도 "시장개입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모스 호치스타인 국무부 국제에너지문제 특사는 최근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사람들은 미국이 국제유가 폭락 때 무엇을 할지 묻는데 결정해야 하는 것은 시장"이라며 "미국은 원유시장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과 OPEC의 버티기 전략으로 국제유가 하락 추세가 반전의 계기를 맞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는 마틴 루서 킹 목사 기념일로 휴장했으나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자거래에서 전 거래일보다 1.17달러(2.4%) 하락한 배럴당 47.5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