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에 맞아 죽어 원한에 사무친 하원의원이 복수를 위해 밤마다 유령이 돼 나타난다", "2백년전 의사당 벽에 갇힌 노예 노동자가 탈출하려 벽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 "의사당이 세워지면서 터전을 잃은 고양이 혼령이 떠돌아 다닌다"
미국 워싱턴 D.C 한복판에 자리한 미 의회 의사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유령이 가끔 나타난다는 얘기들을 한 두번쯤 들으며 이따금 실제로 유령을 목격했다는 신고들이 의회 경찰에 접수되곤 한다.
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미 의회에는 의사당이 지어지고, 의정활동이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의 숱한 일화들을 배경으로 하는 유령.귀신 얘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미 하원은 31일 핼러윈 데이를 맞아 유령이 출몰한다는 의사당내 6개 장소를 외신기자들에게 공개했다.
◇하원의원 유령 = 1887년 12월10일 캔터키주의 지방지 루이지빌 타임스의 의회 출입기자 찰스 킨케이드는 켄터키주 하원의원 프레스턴 타울비가 18세의 하원 사무처 여직원과 `밀회'를 즐기며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로 타울비의 정치적 생명은 끝났다.
그후 재출마를 포기하고 의회 로비스트로 변신한 다혈질의 타울비는 의회에서 킨케이드와 만날 때마다 욕설을 퍼붓고 그의 귀나 코를 꼬집고 비트는 괴롭힘으로 앙갚음을 했다.
그러기를 2년여, 1890년 2월28일 하원 본회의장 계단앞에서 킨케이드와 맞닥뜨린 타울비가 언제나처럼 그의 귀를 비틀어 잡아당기자 반복되는 괴롭힘을 참다못한 킨케이드는 코트에서 숨겨둔 권총을 꺼내 타울비의 머리에 발사했다.
치명상을 입은 타울비는 11일뒤 사망했다.
살인혐의로 붙잡힌 킨케이드는 재판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했고 두 달뒤 무혐의로 풀려났다.
당시 총상을 입은 타울비가 흘린 핏자국들은 아직도 현장인 의사당 남서쪽 계단에 선연히 남아 있다.
그후 킨케이드를 찾아 복수하려고 사건 현장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타울비의 유령을 보았다는 의회 직원과 경비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노예 노동자의 절규 = 18세기 후반에 지어진 의사당 건물 건축을 위해 많은 노예 노동자들이 동원됐다.
공사는 여름에는 찌는 듯한 더위, 겨울에는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라는 악조건속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1794∼1800년 의사당 기초 공사가 진행되던 무렵 혹사당하던 한 노예 노동자가 공사장 한 귀퉁이에 쉴 곳을 찾아내 잠시 휴식을 취하다 깜빡 낮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도 모르는 새 공사는 진행됐고 잠에 곯아 떨어진 그는 돌벽에 갇혀버렸다.
결국 의사당의 토대와 벽이 그의 무덤이 돼버린 것이다.
지금도 의사당 중앙홀의 벽에 기대 귀를 기울이면 그 때 불쌍하게 갇혀버린 노예가 빠져나오기 위해 벽을 두드리고 긁어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 유령 = 미국의 2대 대통령이었던 존 애덤스와 함께 부자(父子) 대통령으로 유명한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17년동안 하원의원으로 일했다.
그는 1848년 2월21일 하원 의원으로 본회의장에서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던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당시 하원의장 방으로 옮겨진 그는 이틀뒤 그 방의 소파에서 숨졌다.
지금은 루이지내아주 여성 하원의원 린디 보그스의 이름을 따 여성 의원 전용 서가로 바뀐 이 방에는 존 퀸시 애덤스가 숨졌던 소파가 그대로 보존돼 있고, 그의 흉상도 있다.
역시 애덤스가 살아있을 적 모습으로 이 방을 돌아다니고, 자신이 연설하다 쓰러진 인근 옛 하원 본회의장을 어슬렁거리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증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소문 때문인지 여성 의원 전용 서가지만 이곳을 찾는 여성 의원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이밖에도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됐던 의사당의 중앙홀인 로툰다 야전침대에서 극심한 고통끝에 수술을 받다 숨진 병사의 비명소리가 지금도 들린다고 하며, 의사당내에 자리잡은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과 북군의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 동상이 밤늦은 시간에 스스로 움직여 악수를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믿지 못할 의회 경비원의 증언도 있다.
또 옛날 고양이 소굴이었다는 젱킨스 언덕이 1794년 의사당 착공으로 파헤쳐지면서 가족을 잃은 엄마 고양이가 아직도 아기 고양이를 찾으러, 옛 터전이 위치했던 의사당 지하층 복도를 배회하고 있다고 하며 고양이 발자국까지 남기고 있다.
미 하원 사료담당관 앤소니 월리스는 "앞으로 유령이 출몰하는 의사당내 6곳을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해 역사 투어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