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수출이 힘이다] 2부. 희망이 보인다 <7> 유럽인 사로잡은 삼성폰
저가공세 피하고 터치폰등 앞세운 프리미엄전략 주효
영국선 소니에릭슨·노키아 제치고 6개월째 1위 질주
| 런던 시내 한 휴대폰 매장의 쇼윈도에 삼성 휴대폰 광고 배너가 걸려 있다. 삼성 휴대폰은 지난해 가을 이후 영국시장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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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영국 런던 교외 처시(Chertsey) 지역의 삼성하우스. 이 곳에서 일하는 300여명의 현지채용 인원과 10여명 한국인 주재원들의 표정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밝다. 삼성전자 휴대폰의 영국 시장 점유율이 노키아를 누르고 6개월째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휴대폰에 대한 현지 소비자들의 반응은 런던 시내 휴대폰 소매점을 들어가면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런던 시내 한 매장의 판매원은 "지난해 이후 터치폰 등 삼성전자 신제품에 대한 고객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휴대폰이 영국에서 1등 브랜드 위치를 굳히기 위해 애쓰고 있다. 프랑스에서 4년 연속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나온 희소식이다. 영국 휴대폰 시장은 '유럽 시장의 바로미터'로 불리고 있어 이번 삼성전자의 성과는 더욱 의미가 깊다. 한국 휴대폰이 영국 진출 10년만에 기존의 거인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며 유럽의 새로운 강자로 위치를 굳혀가는 것이다.
◇3국지를 2국지로 바꾸겠다 = 영국 시장은 휴대폰 단말기 제조사의 테스트 마켓이자 신기술의 경연장으로 통한다. 보다폰, 오렌지 등 유럽 굴지의 이동통신 서비스 회사들이 본사를 영국에 둔 데다 대규모 네트워크를 가진 휴대폰 유통사들과 지역 소매상이 단말기 시장에 혼재해 있다. 영국 소비자들은 신기술에 대한 관심과 적응도가 빠르다. 비싸더라도 새로운 제품을 써보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고 디자인에 민감하다.
때문에 영국은 노키아와 소니에릭슨 등 기존 글로벌 강자들이 유럽의 보루로 삼는 곳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노키아가 40% 대의 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유지해왔고 소니에릭슨이 TV 등 소니 가전제품의 선호도를 등에 없고 2위를 지켜왔다.
이런 영국에서 지난해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졌다. 휴대폰 업계에서 이른바 '신(新)삼국지'라고 부르는 사건.
지난해 1월 영국 휴대폰 시장 점유율을 노키아 35.4%, 소니에릭슨 24.1% 삼성전자 19.3%로 시작했다. 그러다 5월에는 삼성이 23.6%로 도약하며 19.9%의 소니에릭슨과의 순위를 뒤집었고 35.3%의 노키아를 추격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삼성전자는 내친김에 10월에는 점유율을 28.3%로 늘리며 영국 시장 진출 이후 처음으로 노키아(27.6%)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고 이후 현재까지 노키아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다.
유럽 전체를 보면 삼성전자 휴대폰은 올해 1월 기준 23.6%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8.2%의 소니에릭슨은 이미 멀찌감치 따돌렸고 노키아의 철옹성(37.1%)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영국법인 고위관계자는 "영국만 보자면 아직은 노키아, 소니에릭슨과의 3국지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본다"면서 "더욱 분발해 유럽에서 노키아와의 2국지 체제를 굳히기 위한 경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프리미엄 전략이 열쇠=삼성전자가 영국에서 누구도 넘지 못할 걸로 보이던 벽을 뛰어넘은 비결은 뭘까.
삼성전자 영국법인 고위관계자는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고가제품, 화소수가 높은 카메라를 채용한 제품, 터치폰 등 혁신적인 기능을 담은 제품을 위주로 마케팅을 전개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 가격으로 승부하거나 저가 제품을 위주로 한 물량공세는 철저히 멀리했다.
이 같은 프리미엄 전략은 고객 지향적인 연구개발(R&D)을 기반으로 한다. 삼성전자 영국법인 관계자는 "소비자가 뭘 원하는 지를 먼저 파악한 뒤 상품을 기획하고 R&D 역량을 쏟아부어 기능을 완성하는 로드맵을 작성해 제품을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휴대폰 용 디지털카메라, 칩셋, LCE, AM OLED 등의 핵심 부품에 대한 삼성 내 '인하우스' 개발역량이 있는 것도 프리미엄 제품 생산 능력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제품만 유럽 시장에 공급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 등 유럽 각국 시장도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가품과 대중제품으로 양극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법인 관계자는 "건설 현장 근로자를 겨냥한 튼튼한 전화기와 물을 만지는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방수폰 등 수요가 있는 곳은 파고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전자제품 전 분야 1등 하겠다 = 삼성전자가 유럽에 전개하고 있는 제품군은 크게 나눠 휴대폰, TV, 디지털카메라 등 15개. 이 중 TV, 홈시어터, 소형 티지털카메라, 셋톱박스, 양문형 냉장고 등이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으며 나머지 품목도 2~3위에 포진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목표는 15개 제품군 모두 1위를 차지하겠다는 것. 시장의 1위만이 누리는 프리미엄은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영국법인 관계자는 "시장의 1위 업체가 되면 유통업체와의 관계가 납품자-판매자의 관계가 아닌 파트너가 된다"면서 "이 단계가 되면 유통업체와 함께 상품을 기획할 수 있어 2위와는 전혀 다른 시장 접근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1위 업체는 또 유통업체와 판매 계획도 함께 세울 수 있어 재고가 줄여 건전한 이익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유리함도 지닌다.
이와함께 삼성전자는 1위 업체의 지역사회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프리미어리그 첼시 후원, 유방암 예방 사업 지원 등 지역 친화적인 활동의 폭도 넓혀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번이 두 번째 영국 근무인 최윤호 삼성전자 구주총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1990년대 소니에 도전한다고 하면 현지인들이 무모하다고 평가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면서 "전 분야에서 1위를 달성해 명실공히 유럽의 1등 브랜드를 만드는 데 도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