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신한·하나금융 등 국내 대형 금융지주들이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사외이사들을 대거 물갈이하면서 새로운 이사회 진용을 구축했다. 지주 이사회는 금융그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서 지난해 'KB 사태' 이후 이사회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상황이다.

전반적으로 상당 폭의 개편이 이뤄진 가운데 각 금융지주 회장은 그룹이 처한 현실과 특성에 맞는 이사회를 구성,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KB는 거물급 사외이사들을 영입하며 고질적인 '외풍 차단'에 나섰고 신한은 재일교포 등 전통적 파트너들과의 공조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며 강력한 지배구조를 유지했다.

하나금융은 지주 사외이사들의 하나·외환은행 사외이사 겸직 체제를 도입하며 통합 작업에 한발 더 다가섰다. 농협금융지주와 우리은행도 대폭의 이사회 개편이 이뤄졌으나 아직까지 정부의 입김이 센 곳인 탓에 관피아 및 정피아 논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가장 파격적인 이사회 개편이 이뤄진 곳은 KB다. 윤종규 회장은 최영휘 전 신한금융투자 사장과 유석렬 전 삼성카드 사장 등 경쟁사 최고경영자(CEO) 출신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여기에 주주 제안권까지 도입,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의 추천으로 이병남 LG인화원 원장을,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의 추천으로 김유니스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를 영입했다. 또 다른 사외이사 내정자인 박재하 아시아개발은행 연구소 부소장의 경우 다름 아닌 신상훈 전 신한은행장의 추천으로 영입된 인사다. 가장 큰 경쟁자인 신한의 전 CEO를 영입한 데 이어 전직 신한은행장의 추천까지 받아들인 파격적인 이사회 구성이다.

이 같은 이사회 구성에는 각계의 거물급을 모셔 정치권 등의 외풍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경쟁자인 신한의 노하우를 흡수해 '리딩뱅크' 자리를 회복하겠다는 윤 회장의 의지가 그대로 보인다. 윤 회장은 이번 이사회 구성 과정에서 들어온 일부 외압도 몸을 던져 막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1등 금융지주 신한은 전통적으로 강했던 지배구조 체제를 더욱 공고히 유지했다. 임기 만료를 앞둔 8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5명은 연임시키고 3명은 교체하기로 했다. 히라카아 유키 ㈜레벨리버 대표이사, 필립 에이브릴 BNP 파리바 일본대표, 박철 전 리딩투자증권 대표 등 3명이 신규로 추천된 사외이사들이다.

이에 따라 신한 전체 사외이사 10명 가운데 재일교포 측 4명, 협력 관계인 BNP파리바 측 1명 체제는 그대로 유지됐다. 기존의 재일교포 사외이사들은 정진 진코퍼레이션 회장, 고부인 ㈜산세이 대표, 권태은 나고야 대학 명예교수 등으로 한동우 회장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재일교포들의 신한 지분은 현재 17% 수준까지 내려왔으나 신한은 꾸준히 이사회 안에서 창업 공신인 재일교포 주주들을 중용하고 있으며 이를 정치권 등의 외풍을 차단하는 방패막이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나금융은 언론인 출신인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이진국 전 신한금융투자 부사장, 윤성복 전 KPMG삼정회계법인 대표, 양원근 전 KB금융지주 부사장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 신한과 더불어 외풍에 강한 조직인 하나금융에서도 정피아 인사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다방면에서 전문가들을 영입했다는 평가다.

이 밖에 하나금융 이사회 개편에서 주목되는 점은 최초로 지주 사외이사의 하나·외환은행 사외이사 겸직 체제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광주은행장 출신인 송기진 이사가 외환은행 사외이사를 겸임하고 김인배 이사가 하나은행 사외이사를 겸임한다. 이는 하나·외환이 통합됐을 경우 사외이사진이 급격히 방대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포석이다. 하나금융 고위관계자는 "통합 작업에 대비, 양행의 사외이사들을 조금씩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이뤄진 이사회 개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은행과 농협금융지주도 이사회 개편이 단행됐지만 낙하산 논란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정부의 입김이 센 곳인 탓에 대부분이 정피아·관피아 인사들로 채워졌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개편하겠다고 큰소리 치면서 막상 정부가 소유한 은행에서는 가장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보여주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