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인상을 둘러싼 해묵은 숙제가 다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기적으로도 전력수요가 많은 7~9월이 다가왔고 낮은 전기요금이 전력사용 급증, 한국전력 경영압박의 요인이 돼 여러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도 지난달 한 모임에 참석해 “에너지 가격 메커니즘이 효율적으로 작동되도록 하기 위해 경기가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면 전기나 가스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전기ㆍ가스요금 책정에 있어 원가주의 요금제나 소비자 선택 요금제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낮은 전기요금, 소비왜곡 불러=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이웃나라 일본의 59% 수준이다. 1인당 전력소비량(7,607kWh)은 국민소득이 2배나 높은 일본(7,372kWh)보다 높다. 또 원가를 기준으로 일반용(103.4%)을 빼고는 주택용(95.8%), 산업용(91.4%), 농사용(38.3%) 등 모두가 그 이하다. 다른 에너지에 비해서도 그 가격이 낮다. 전기요금을 100으로 봤을 때 등유는 162, 경유는 188이다. 이렇다 보니 유류사용을 줄이고 전기사용을 늘리면서 비효율적인 전력소비도 급증하고 있다. 사무실ㆍ음식점은 물론 화훼ㆍ축산농가 등에서 전기난방으로 대체한다거나 산업체의 크레인ㆍ열처리기기를 전력으로 바꾸고 있다. 전기사용의 증가는 불필요한 에너지수입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력의 과소비량은 2만3,172GWh. 불필요한 에너지를 수입하는 데 매년 25억달러가 낭비된다. 지난해 기준 에너지수입액은 1,400억달러로 선박ㆍ자동차ㆍ반도체ㆍ철강의 수출액 규모와 비슷할 정도다. 이와 함께 전력의 과다소비는 CO2 배출량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낮은 전기요금에 따른 전력과소비가 결국 저탄소ㆍ녹색성장산업을 키우는 데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쌓이는 경영적자 누적…부담은 후세대=원가 이하의 전기요금은 한국전력 경영악화의 결정적인 요인이다. 지난해 한전의 당기순이익 적자규모는 2조9,525억원. 올해 역시 2조7,747억원이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경영적자가 단순히 실적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통해 한전은 1조2,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절감액 중 수천억원은 수선유지비다. 자동차를 정기적으로 정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결국에는 정전사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경영적자가 이어질 경우 송변전 설비 등의 ‘신규투자’에도 영향을 미친다. 영업이익이 없다 보니 투자금액 모두는 외부조달로 충당하고 있다. 올해 한전이 투자하기로 한 5조4,000억원도 모두 외부에서 조달될 예정이다. 특히 지난해 적자를 기록하면서 한전의 신용등급은 한 단계(무디스 A1→A2) 떨어졌다. 이는 조달비용의 증가를 뜻한다. 실제 신용등급 하락으로 한전은 약 600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소요된다고 밝혔다. 누적적자는 해외자원 개발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원자급률이 떨어지면 수입이 늘게 돼 이 역시 원가상승의 원인이 된다. 한전은 가격왜곡에 따른 전기사용 증가로 ▲에너지수입액 3조1,000억원 ▲발전소 추가 건설 1조9,000억원 ▲CO2 배출량 2,000억원 ▲금융비용 2,000억원 등 모두 5조4,000억원의 국가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지경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누구나 전기요금의 현실화는 인정한다”면서 “누군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기가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