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현지르포] (2) 울산 효문공단

『탄탄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만큼 현대자동차의 기아자동차 인수는 납품물량 증가와 고용안정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빅딜자체가 대규모 감원성격을 띠고 있는데다 우량업체라 하더라도 기아 협력업체들의 기술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퇴출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들이 몰려있는 울산시 북구 효문·연암동 효문공단내 세종공업. 현대자동차에 23년간 자동차용 머플러를 납품해 왔던 이 회사 670명의 근로자들은 요즘 현대자동차의 기아자동차 인수와 관련한 실익을 놓고 저울질에 한창이다. 자동차 빅딜에 관한 이들의 시각은 크게 두가지다. 자동차 빅딜이 원청사의 생산물량 증대를 가져와 우량 협력업체의 납품물량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과 오히려 추가 대량감원의 신호탄이 된다는 시각이 그것. 빅딜찬성 근로자들은 올들어 내수판매가 예년의 절반수준에 머물러 협력업체가 고사위기에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빅딜에 따른 퇴출 협력업체의 물량을 우량업체가 떠안으면 숨통을 트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단관계자는 『기아자동차 인수를 계기로 연간 생산능력이 250만여대로 늘어난 현대자동차가 세계 10대메이저에 진입하기 위해선 기술력을 키워야 하는만큼 우량 협력업체를 정책적으로 키우지 않겠는냐』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일부 근로자들은 상당수 현대자동차 임원들이 기아자동차 경영을 도맡음에 따라 연고나 친분상 기아자동차 협력업체보다는 혈연관계였던 자신들이 납품물량 수주에 유리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특히 가동률 저하가 계속될 경우 추가감원 문제가 또다시 현안문제로 떠올라 노사갈등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감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빅딜로 고용안정을 기할 수 있다고 이들은 보고 있다. 반면 빅딜반대 근로자들은 빅딜자체가 중복과잉 부문을 없애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인 만큼 경쟁력이 뒤진 업체의 경우 퇴출이 불가피하고 이는 곧 대량감원을 발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 노조간부는 『기술력 우위에 대한 평가기준이 애매한데다 기아자동차 협력업체의 기술력도 만만치 않아 쉽게 퇴출대상 기업에서 제외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며 불안감을 표시했다. 이 때문에 IMF한파 이후 200여명을 내보냈던 이 회사는 현대자동차의 기아자동차 인수방침 발표를 계기로 추가 감원설로 술렁이고 있다. 회사측은 한 때 40%까지 떨어졌던 가동률이 10월이후 70~80%로 회복되고 있고 고용안정협약을 통해 2000년 2월까지 감원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을 한 만큼 추가감원은 있을 수 없다고 거듭 밝히고 있지만 근로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불안감은 상대적으로 자본이나 규모면에서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1차협력업체나 이들에게 단순 부품을 납품하는 2차 협력업체들에게 더욱 깊다. 차량용 시트를 납품하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자본력이 열악하고 기술력도 독점적이지 않는 업체의 경우 중복과잉된 하청업체 해소작업의 최대 희생양이 될 것』이라며 『직접적인 외압은 없겠지만 납품단가 인하 등 납품조건 악화로 물량 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미 부도를 내고 회생의 길을 걷고 있는 업체들의 위기감은 더욱 심각하다. 이들 부도업체는 원청사가 부도업체를 회생시켜가며 부품납품을 조달받기보다는 기술력이 있는 기아자동차계 협력업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시트와 선바이저를 납품해온 북구 연암동 세찬산업은 지난 2월 부도이후 220명이던 종업원을 140명으로 줄이며 자구노력을 벌인 끝에 가동률을 80%까지 끌어올리며 회생의 길을 걷고 있지만 이번 빅딜로 난감해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빅딜을 계기로 친분이나 연고를 내세워 물량납품에 의존해왔던 협력업체들은 그동안의 안일한 경영방식에서 벗어나 기술력으로 경쟁하는 새로운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무리한 사업확장보다는 매출액에 대한 기술개발 투자비율을 더욱 높여 경쟁력을 높여야 하며 차입경영 의존경향도 차제에 뿌리뽑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자동차 빅딜에 따른 고용불안 문제는 군살빼기 차원이 아니라 기업생존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일자리지키기 차원에서 노사간 힘겨루기 양상은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세종공업 최용규노조위원장은 『자동차 빅딜에 따른 협력업체들의 생사여부는 원청업체인 현대자동차의 정책방향에 결정될 것으로 보여 원청업체와 협력업체의 노사문제는 차이가 있다』며 『회사생존을 위해서라면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울산=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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