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채운 신지애, 올해의 선수 위해 힘찬 시동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박원진 기자] 딱 한 뼘이 부족했다. 단 1점 차이로 올해의 선수상을 오초아에게 넘겨준 것을 제외하고 미국 LPGA투어 최연소 상금왕, 신인왕, 다승왕을 석권한 신지애. ‘싹쓸이’는 무위에 그쳤지만 데뷔 첫해 3관왕 위업을 달성한 그가 되레 팬들을 위로한다. 그는 올해의 선수상을 눈앞에서 놓친 게 오히려 다음 시즌 ‘보약’이 될 거라고 믿는다. 신지애가 시즌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다. 신지애는 시즌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만점을 줬다. 자신에게 너무 후한 걸까? 지난 시즌 그에게 가장 큰 성취는 상금이나 기록이 아니었다. ‘빠른 적응’이 제일 큰 소득이었다는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왜 100점이 과한 점수가 아닌지 알게 된다.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자신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일까. 신지애를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신지애와의 1문1답 ▲LPGA 멤버로 뛰고 있다는 자체도 신기한데, 시즌 전 목표했던 것들을 모두 이뤘다. 많은 분들이 ‘올해의 선수상’을 놓친 걸 아쉬워하신다. 물론 나도 많이 아쉽지만 그건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미국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하면서 세웠던 목표를 초과 달성했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좋은 성적을 내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항상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본다. 즐기는 마음도 필요하다. 골프는 역시 멘탈이다. 골프가 멘탈 경기라는 걸 알면서도 ‘멘탈’에 대해서 너무 어렵게,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내가 생각하는 멘탈은 ‘긍정적인 마음과 즐기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없으면 긴장하고 초조해진다. 나는 항상 긍정적이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이게 큰 도움이 된다. ▲중요한 승부처에서 멘탈을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승부의 분수령이 되는 상황에서는 딱 한 가지 그 순간의 샷을 성공시키는 이미지만 떠올린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냥 단순하게 생각한다. 승부처라는 부담감보다는 가장 좋은 샷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어드레스에 들어가고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샷을 한다. ▲LPGA 데뷔 첫해 최연소 상금왕, 신인왕, 공동 다승왕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올렸다. 가장 큰 성취는 무엇이라고 보나. 성적보다는 미국 무대에 잘 적응했고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점을 꼽고 싶다. 2008년에는 사실 큰 부담이 없었다. LPGA 정식멤버가 아니어서 ‘잘 치면 좋고 못쳐도 본전’이라 생각했다. 반면 정식으로 데뷔한 2009년엔 솔직히 부담감이 컸다. 전혀 다른 환경과 일정 탓에 어려움이 많았고, 생활리듬이 바뀌어 컨디션 조절에도 애를 먹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익숙해졌고, 이제는 완전히 적응했다. 미국에서 인지도가 높아진 것도 가슴 뿌듯하다. 내 이름을 불러주며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나를 알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해외에서 첫 시즌을 소화하면서 힘들었던 점도 많았겠다. 우선 이동 거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집에 거의 들어가지 못하고 호텔을 전전하는 형편이다 보니 언제나 짐이 넘쳤다. 그 짐들을 가지고 일주일마다 옮겨 다녀야 한다. 선수들은 이런 짐 때문에 부상을 입기도 한다. 4일 동안 경기를 치르는 것도 힘들었다. 한국투어는 대부분 3라운드여서 쉴 틈과 연습할 시간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4일 시합에 장거리 이동을 하는 탓에 코스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연습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게 제일 힘들었다. 이번 시즌 몇몇 경기는 지난해와 같은 코스에서 열리므로 약간은 여유가 생길 것 같다. ▲비행기를 타는 일이 많은데, 기내에서는 주로 무엇을 하나. 부족했던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간혹 잠이 안오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다. 그래서 비행기를 탈 때는 MP3와 책을 반드시 챙긴다. ▲한국에서 활약할 때와는 환경이 많이 다른데, 제일 중요한 점은 어떤 부분일까. 적응이 최우선이다. 적응하지 못하면 자신감도 줄어들고 성적으로 이어진다. 국내 투어가 열리는 코스는 지형과 잔디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미국은 대회마다 코스 환경과 특성이 다 제각각이다. 어떤 대회에서는 흔히 말하는 찍어치는 아이언샷이 필요하고 어떤 코스에서는 쓸어치는 아이언샷을 구사해야 한다. 그린도 매우 달라 어떤 그린에서는 때리듯 퍼팅을 한다면, 다른 그린에서는 부드럽게 굴려야 한다. 연습 라운드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잔디와 코스 특성에 빠르게 적응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코스뿐 아니라 문화적 차이, 음식 등에도 빨리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많을 텐데, 그 중에서도 제일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나. 우승했던 기억들, 여러 친구와 보낸 소중한 시간들, 떠오르는 순간이 많지만 가장 기쁘고 영광스러웠던 건 신인왕을 받은 자리였다. 신인왕 수상은 일생에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없지 않나. 거기다 루이스 석스 같은 위대한 LPGA 창시자와 한자리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영광이었다. 세계 골프사에 이름을 남긴 역사적 인물들이 대부분 신인왕 출신인데, 그 대열에 내가 들어갈 수 있어 너무 기뻤다. ▲좀처럼 서운한 표정을 드러내는 스타일이 아닌데, ‘올해의 선수상’을 놓친 순간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물론 지금 생각해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렇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1점차로 놓쳤던 게 오히려 약인 셈이다. 이로 인해 한 타가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다시 한 번 깨우칠 수 있었다. 한편으론 올해의 선수를 놓친 것이 더 잘됐다는 생각도 든다. 한 번에 모든 걸 얻었다면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을 것이다. 성취욕 때문에 다음 시즌이 더 기다려진다. ▲내년 시즌 목표는 무엇으로 잡았나. 항상 시즌이 시작될 때 많은 분들이 목표를 물어보는 데, 특별한 목표를 세우지는 않는다. 그저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다만 올해보다 더 나은 해로 만드는 게 목표라면 목표가 아닐까. 성적도 중요하지만 내 스스로가 성장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시급한 보완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당장은 체력보강이 급선무다. 원래 체력엔 자신 있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유연성과 균형감 위주의 훈련을 많이 했다. 특히 지난 겨울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체력훈련을 거의 못했다. 그래서인지 시즌 후반에 가서 체력부족을 절실히 느꼈다. 이를 토대로 올 겨울엔 체력 훈련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한국은 이동거리가 짧고 집에서 다니기 때문에 체력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지만, 역시 미국 투어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시즌을 대비해 어떻게 훈련하고 있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해달라. 체력, 드라이버 샷거리, 기술적으로 안정된 트러블샷 이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체력훈련을 위해서 호주출신의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했다. 체력 강화에 힘쓰다 보면 자연스레 드라이버 샷거리도 늘어날 것이다. 스윙을 새롭게 바꾸기보다는 현재 스윙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오직 체력강화를 통한 근력향상으로 거리를 늘리고자 한다. 스윙코치와 함께 그린 주변에서의 트러블샷이나 쇼트게임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을 생각이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국제적으로 받을 것 같다. 어떤 스트레스가 제일 크고 어떻게 해소하나. 아빠한테 혼날 때 받는 스트레스가 제일 크다.(웃음) 골프와 관련해선 잘못된 부분을 파악해 방법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아빠가 혼낼 땐 나의 어떤 멘탈도 소용이 없다. 가령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쉬는 거라 생각하는데, 아빠는 집에서 잠자고 휴식을 취해야 제대로 쉬는 거라고 말씀하신다. 해소법? 그냥 음악을 듣거나 혼자 조용한 시간을 가진다. ▲골프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제 ‘신지애’라는 이름은 알 정도다. 유명세를 실감하나. 요즘엔 길거리만 지나가도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아서인지 그때마다 쑥스럽기도 하고 감사함도 느낀다. 한편으론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편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게 오히려 좀더 신중히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자제력을 많이 길러주는 것 같다. ▲골프를 안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평범한 생활이 부럽지는 않나.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만약에’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만약에’라는 말은 막연한 기대를 품게 하고, 후회를 하는 순간에 떠올리는 용어인 것 같다. 내 또래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가끔 자유시간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다만 주위에서 나를 좀 다르게 바라볼 뿐이다.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다른 무엇보다 존경받는 선수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아니카처럼 정상에서 그만둘 수 있기를 바란다. 그건 지키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은퇴를 하게 되면 골프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싶다. 골프만 하고 살기엔 내 삶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골프와 관계된 일을 한다면 경기를 통해 느끼고 배웠던 부분을 적용할 수 있는 코스설계 일을 해보고 싶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