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삼성과 검찰

이병관 기자<사회부>

검찰이 삼성을 앞에 두고 또 시험대에 섰다. 지난 9일 학수 삼성 부회장을 97년 대선 당시 불법 로비자금 제공 혐의로 소환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삼성 수사를 시작한 것.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안기부 도청테이프, 이른바 ‘X파일’ 수사 여론에 밀린 ‘면피용’ 소환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제 막 칼을 빼든 검찰 수사에 이러쿵저러쿵 예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검찰 수뇌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독립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 1년간 권력형 비리로 알려지며 국민적 의혹을 샀던 유전게이트, 행담도 비리, 서울시 청계천 비리 수사를 지켜봤던 기자도 진실규명을 위해 수개월간 밤잠을 설치는 검사를 목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삼성’ 얘기만 나오면 검찰이 미덥지 못한 이유는 뭘까. 이는 이번 수사가 비단 독수독과 이론(도청테이프 등 불법 수집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 등 넘어야 할 법리문제가 있고 테이프 외에 자백과 증거를 확보하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삼성 관련 검찰의 불신은 ‘전력(前歷)’에 기초하고 있다. 삼성SDS 헐값 사채발행 사건은 참여연대의 거듭된 고발에도 결국 무혐의 처리됐고 올들어 삼성이 근로자의 휴대폰을 불법적으로 위치 추적했다며 고발당한 사건도 무혐의로 결론났다. 검찰은 불법 위치 추적 사실은 인정되지만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발표했다. 2002년 대선자금 ‘차떼기’ 수사도 삼성이 385억원을 정치권에 건넨 것이 밝혀졌지만 이건희 삼성 회장은 혐의가 없었다. 이학수 부회장이 이 회장 몰래 이 회장의 개인 돈 385억원을 빼냈기 때문에 이 회장은 잘못이 없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었다. 이른바 ‘국민정서법’과 ‘법률 판단’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검찰은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는 검찰의 대삼성 전력이 미덥지 못하다. 이번 수사는 당사자들의 자금제공 발언 테이프가 확보돼 어찌보면 ‘답’이 나와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입증 방법이다. 녹록치 않아 보인다. 검찰이 삼성 관련 또 하나의 불신 사례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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