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잔류 압박 수위 높여

■ 확산되는 유럽발 위기- ECB, 그리스 4개銀 유동성 공급 중단
유럽 정치권, 그리스 2차 총선 '유로 멤버십 국민투표' 전환 시도


돈줄 죄기 이어 정치적 도박에 "유럽인 목숨 가지고 포커 게임"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강력 반발… 탈퇴·타협·긴축 이행 등 전망도


유럽 정치권이 다음달 17일로 정해진 그리스 2차 총선을 사실상 '유로 멤버십 국민투표'로 몰아가며 유로존의 운명을 건 정치적 도박을 벌일 태세다.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탈퇴 여부를 국민들이 투표로 직접 결정하는 구도를 형성해 유로존 잔류 압박의 수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16일(현지시간)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중단해 경제적 불안감이 높아진 가운데 총선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는 정치적 부담감까지 더해진다면 결국 그리스 국민들이 긴축에 찬성하는 정당에 표를 던질 것이라는 의도에서다.

특히 최근 잇따라 실시된 그리스 여론조사에서 국민 80% 이상이 유로존 잔류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를 최후의 카드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리스 2차 총선을 유로 멤버십 국민투표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리스크가 큰 정치 도박"이라면서 "유럽 정치권은 이를 통해 긴축 프로그램에 환멸을 느끼지만 유로존에 남기를 원하는 그리스의 표심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조제 마누엘 두랑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16일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자청해 "그리스가 EU와 유로존의 일원으로 남기를 원하지만 유로존에 남을지를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그리스인들의 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전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첫 정상회담에서 밝힌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바호주 위원장은 또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의 대가로 합의된 긴축 프로그램은 수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스에서는 지난해 11월에도 당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2차 구제금융안 및 유로존 잔류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제안했으나 그의 자진 사퇴로 투표안이 백지화된 바 있다.

그러나 유럽 정치권의 이 같은 시도에 대해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당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EU와 독일은 유럽 국민들의 목숨을 가지고 포커게임을 하고 있다"면서 "당장 이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리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6일 총선에서 제2당에 오른 급진좌파연합은 다음달 2차 총선에서는 제1당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편 그리스 2차 총선 결과에 대해 외신들은 다양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그렉시트ㆍGrexit)할 가능성이 크지만 급진좌파연합이 주장하는 대로 유로존에 잔류하면서 긴축 협약만 거부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또 긴축안에 찬성하는 신민당과 사회당(PASOK)이 승리할 경우 EU와 긴축안 재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가장 간단한 방법은 어떤 당이 집권하던지 간에 기존에 국제사회와 합의한 긴축안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WSJ는 강조했다.

한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차 총선에서 반(反)긴축 정권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 긴축안을 백지화해 EU로부터의 구제금융이 중단되고 결국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새로운 반긴축 정권이 EU와 긴축안 부분 수정에 타협할 경우 유로존 위기는 연착륙할 수 있으며 EU의 압력으로 기존 긴축안을 이행하기로 할 경우 국민들이 반발해 정권 기반이 불안해지면서 혼란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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