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의 불똥이 실물로 튀면서 경기하강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기업의 재고가 빠르게 늘고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기업 설비투자가 급감하는 등 경제의 주요 동력인 수출과 제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경기동행지수와 선행지수도 두 달 연속 동반 하락하는 등 경기둔화가 본격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경기둔화 예고=통계청이 30일 발표한 '10월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실물경제가 힘을 잃어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광공업과 서비스업ㆍ건설업ㆍ공공행정 등 4개 부문으로 구성된 전(全)산업생산은 전달보다 0.3% 증가했다. 서비스업과 건설업이 각각 0.7%, 3.1% 늘어난 덕분이다. 하지만 지난 10월 광공업생산은 자동차 등이 부진한 탓에 전달보다 0.7% 줄었다. 광공업생산은 7월과 8월에 전달보다 각각 0.4%, 1.9% 줄다가 9월에는 1.2% 늘었으나 이번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9월의 호조세도 8월 일부 대기업의 공장 이전 등으로 광공업생산이 급감한 데 따른 기저효과임을 감안하면 제조업의 부진이 4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10월 내수지표가 선방했지만 9월이 워낙 부진했기 때문으로 크게 의미를 두기 어렵다. 서비스업생산은 9월에 전달 대비 1.6% 줄었다가 10월에는 0.7% 느는 데 그쳤다. 도소매(2.1%), 금융ㆍ보험(2.1%) 등이 호전했지만 부동산ㆍ임대(-3.8%)가 부진했던 탓이다. 소매판매도 8, 9월 연속 -0.2%, -3.2%를 기록하다 10월 0.6% 소폭 늘었다. 향후 내수 전망도 밝지 않다. 가계부채 부담이 크고 실질소득도 제자리걸음이어서 앞으로 소비여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10월 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10월보다 3.1%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09년 4월(2.8%) 이후 3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을 기록한 것. 이처럼 판매가 부진하자 백화점들은 '송년 세일' 기간을 역대 최장으로 늘려놓았을 정도다. 현재와 미래의 경기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는 경기동향지수와 선행지수도 전달보다 각각 0.3%, 0.4% 떨어지며 두 달 연속 동반 하락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경기둔화 흐름 자체가 가파르지는 않지만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암운 드리운 제조업ㆍ수출=이 같은 경기둔화는 제조업과 수출이 주도하고 있다. 10월 광공업생산을 업종별로 살펴보면 자동차(-3.0%), 영상음향통신(-4.3%), 1차금속(-2.2%) 등 주로 수출 제조업의 전월 대비 감소폭이 컸다. 또 생산자 제품 출하는 자동차와 반도체ㆍ부품 등의 부진으로 전달보다 1.7% 감소했다. 특히 수출용 출하는 전달보다 2.3%보다 줄면서 내수용 출하 감소폭(1.2%)의 2배에 달했다. 이처럼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서 재고가 크게 늘고 있는 게 우려 요인이다. 10월 생산자 제품 재고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8%나 늘었다. 지난해 12월 17.4% 이후 최대폭이다. 반면 출하는 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재고율(재고/출하 비율)은 109.5%로 전달보다 5.4%포인트 늘었다. 2009년 2월(110.3%) 이후 2년8개월 만에 최고치다. 재고가 느는 가운데 경기는 시계제로의 상황에 빠져들면서 기업들의 설비투자도 급감하고 있다.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12.1% 감소해 2003년 1월(-15.5%) 이후 8년9개월 만에, 전년 동월 대비로도 11.9% 줄어 2009년 8월(-15.2%) 이후 2년2개월 만에 각각 두자릿수 감소율을 나타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9.5%로 지난해 1월의 79.3% 이후 1년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제품을 생산하는 속도가 어느 정도 회복되기 전까지는 투자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편 통계청은 기저효과를 완화하기 위해 내년 경기종합지수를 개편할 예정이다. 정규돈 통계청 경제통계국장은 이날 "향후 경기상황을 보기 위해 선행지수 전년 동월비를 사용했지만 기저효과 문제가 있어 순환변동치를 사용하기로 했다"며 "개편된 지수는 내년 3월 발표하고 1월부터 적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