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하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4ㆍ4분기 미국경제가 0.6% 성장하는데 그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발 금융불안이 드디어 실물경제로까지 파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올 1ㆍ4분기나 2ㆍ4분기에는 미국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져 침체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다. 이 경우 미국 경제와 디커플링 운운하며 건실함을 과시하던 아시아 경제도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다. 미국 경제가 연착륙하는 정도라면 모를까, 침체로까지 악화되는데 아시아 경제만 멀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저간의 상황 변화를 감안할 때 그동안 수출이 경기를 지탱해온 한국 경제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대미 수출비중이 12%까지 떨어지기는 했지만 중국 등을 통한 우회수출 규모가 상당한 점을 감안하면 우리 수출의 미국 경제 의존도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 여기에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절반이 이뤄지는 아시아 경제까지 성장세가 둔화된다면 수출타격은 불가피할 것이다.
문제는 소비와 투자 등 내수경기가 시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이 타격을 받게 되면 경기 국면이 상승세에서 하강세로 꺾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실물경제 지표를 보면 소비재 판매가 3개월 연속 감소했고 향후 경기국면을 예고해주는 지표인 선행지수 전년동월비 전월차가 마이너스로 반전되는 등 우려스러운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긴축 일변도였던 정부의 거시경제정책 기조가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은 과잉유동성을 줄이고 물가상승 압력을 낮추기 위해 금융긴축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물가오름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을 감안하면 긴축기조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계경기가 둔화될 경우 향후 물가상승 압력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최근에 물가가 오른 것은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이다. 세계경기가 둔화되면 원자재 수요가 줄어들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불안으로 투기성향이 잦아들어 원자재시장에 잔뜩 몰려들었던 투기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로 반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물가불안은 점차 진정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거시경제정책의 목표는 물가보다는 경기에 우선순위가 맞춰져야 한다. 경기흐름이 상승에서 하강으로 바뀌는 신호가 나타날 경우 금리인하 등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실물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금융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금흐름의 변화도 금리인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이 큰 폭으로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한 이후 국내 채권시장으로 해외자본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은 국내채권을 34조원이나 순매수했고 올해 들어서도 1월 한 달 동안 3조원 넘게 사들였다. 내외금리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일어난 결과다. 이렇게 많은 자금이 계속 유입되면 국내 통화관리를 더 어렵게 하고 원화가치의 절상압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금리결정에 이러한 점들이 충분히 반영돼야 할 것이다.
재정정책도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현 정부는 물론이고 새로이 들어설 정부도 재정만큼은 어떤 경우에도 적자가 나서는 안 된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재정의 경기조절 기능 또한 중요하다. 경기 둔화 신호가 나타난다면 재정확대를 통해 경기를 진작시키는 것에 인색할 필요가 없다. 7% 성장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쓰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필요할 때 적절한 경기진작책을 쓰지 못하는 일 또한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