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런던올림픽 육상 1만m 결승전. 중반까지 10위권 밖으로 처졌던 한 선수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최종 성적은 1위. 2위를 한 바퀴 차이로 따돌린 그에게 이런 별명이 붙었다. ‘신발을 신은 전갈.’ 주인공은 체코슬로바키아(당시)의 에밀 자토페크(Emil Zatopek). 1956년 은퇴하기까지 1만m 국제대회 38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정점은 1952년 헬싱키올림픽. 5,000m와 1만m를 석권한 뒤 처음 뛰는 마라톤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생일(1922년 9월19일)까지 같은 동갑내기 부인도 투창에서 우승해 조국에 두 배의 기쁨을 안겨줬다. 체코 국민들은 ‘국제공인 인간기관차’를 열광적으로 반겼다. 16세부터 신발공장 직원으로 일하던 중 우연히 지역 육상대회 회사 대표로 뽑힌 후 승승장구한 신화의 주인공이어서 더 큰 사랑을 받았다. 천부적인 재능만으로 스타덤에 올랐을까. 천만에. 가스 마스크를 쓴 채 완전군장을 지고 다리에는 추를 달고 달린 연습벌레였다. 전력질주-감속-전력질주를 반복하는 인터벌 트레이닝도 그가 만들었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비결인 체력훈련의 원작자가 바로 자토페크다. 대표팀 코치로 일하던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맞은 그는 육군 중령의 신분임에도 군중의 선두에 서서 소련군 탱크에 맞섰다. 숙청 당한 후 광산 노동자로 일할 때도 그의 집 앞에는 주민들이 몰래 전해준 꽃이며 식료품으로 가득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가 따내는 올림픽 금메달의 경제적 효과가 561억원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스포츠가 주는 감동을 어디 돈으로 따질 수 있으랴. 자토페크의 육신은 2000년 세상을 떠났어도 그 정신은 영원히 살아 있다. 체코의 자긍심과 세계인의 감동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