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원산지 기준 등 입장차 못좁혀

EU '항공모함식 협상' 되풀이
'27개국으로 이뤄진 특수성' 만 고수
한미FTA때보다 협상 횟수 많아질듯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 4차 협상에서 자동차 기술표준과 상품양허 등을 놓고 협상이 진척되지 않자 김한수 우리 측 대표는 “EU는 항공모함, 우리는 구축함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27개 회원국으로 이뤄진 EU는 회원국 간 합의된 수준의 틀 내에서만 협상이 가능하고 민감 사안의 경우 귀국한 뒤 내부 조율을 통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EU의 항공모함식 협상태도는 이번 6차 협상에서도 되풀이됐다. ◇잔가지는 일부 쳐냈지만…=6차 협상 종료시점을 하루 남겨둔 가운데 이번 협상의 당초 목적이었던 ‘비쟁점 분야의 타결’은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지적재산권 분야는 긍정적 반응은 이끌어냈지만 타결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먼저 무역구제ㆍ경쟁ㆍ분쟁해결ㆍ투명성ㆍ전자상거래 등 5개 부문은 사실상 타결됐다. 특히 무역구제 분야 중 농산물의 세이프가드도 도입하기로 했다. 또 비관세 장벽과 관련, 자동차 기술표준을 제외한 전기ㆍ전자, 포도주ㆍ증류주, 화학물질 등 나머지 분야에 대해서는 해결의 가닥을 잡은 상태다. 아울러 정부 조달은 우리 공기업을 추가로 개방하지 않고 양측의 민자 사업에 대해 차별하지 않고 개방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서비스ㆍ투자 중 최혜국(MFN) 대우는 양측이 FTA를 체결한 후로 한정해 부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재권의 타결 선언은 다음 협상으로 넘어갔다. 김 대표는 “공연보상청구권이나 의약품자료 독점기간 등에서 EU는 우리 측이 제시한 안에 긍정적”이라면서도 “그러나 최종 결정은 본국으로 돌아간 뒤 결정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되풀이된 EU의 항공모함식 협상=6차 협상은 3대 쟁점 중 자동차 기술표준, 상품양허 등은 논의 대상에서 아예 빠졌다. 또 다른 쟁점인 원산지 기준의 경우 업종별로 우리 측의 입장을 설명하는 수준에서 그치기로 한 만큼 사실상 협상 의제도 아니었다. 때문에 비쟁점 분야에 치중한 6차 협상은 나름대로 순항할 것으로 기대도 컸다. 6차 협상을 끝낸 뒤 7차 협상 전 미진한 것은 별도 논의를 통해 마무리짓고 7차 이후 ‘빅딜’을 통해 한ㆍEU FTA 협상의 타결 선언을 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6차 협상 역시 EU 측은 여전히 27개 국가로 이뤄진 특수성만을 고수하고 있다. 내부에서 합의된 틀 내에서만 협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재권이나 원산지 기준 등에서도 예전의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우리 측의 수정제안도 ‘협상 현장’에서 결정할 수 없다고 답하고 있다. 우리 측 협상단의 한 관계자는 “민감 분야에 대해서는 아무런 전권이 없는데 협상에 탄력이 붙을 것을 기대할 수 있겠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자동차 기술표준이나 원산지 기준 등에 대한 요구 수준은 완고하면서도 명확하지만 우리 측 요구에 대해서는 늘 즉답을 피하거나 기존 입장을 되풀이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상이 이 같은 진퇴를 되풀이하면서 한ㆍEU FTA는 한미 FTA의 7차 협상보다는 최소 한차례 이상 더 많은 8차 혹은 그 이후에나 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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