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31> 시각의 객관화

12월 1일 재미교포 신은미씨와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종북’ 콘서트를 진행했다는 조선일보 등의 보도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에 조선일보 등을 상대로 명예 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YTN 방송화면 캡쳐

작년 북한을 다녀온 이야기를 모 매체를 통해 정기 연재했던 신은미 씨. 최근 그의 친북 발언 논란으로 사회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재미 성악가 출신으로 오랫동안 남-북 문제에 큰 신경을 쓸 여가가 없는 미국인으로 살았던 신씨는 최근 5년간 남편과 북한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성세대의 많은 논의들이 사실상 북한을 향한 ‘색안경’에서 출발한 것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은 그들의 사회가 형성된 나름의 맥락과 시각으로 조명해야만 제대로 분석 가능하다는 논리. 이른바 ‘내재적 접근론’입니다. 한때 우리나라 80년대의 진보 운동권이나 노무현 정부 당시 몇몇 소수 학자들에 의해 선호되었던 분석 관점이기도 합니다. 북한 사회가 오랫동안 국제 사회와 단절되어 독립적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그들의 정치적 행위나 변화상을 깊이 있게 읽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을 인간적으로 포용해야만 가능하다는 논리를 깔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북한의 3대 세습, 즉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를 옹호하고 그 체제가 마치 사회주의 복지국가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에 이르면 신 씨의 주장은 더이상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그는 2005년 북한에서 ‘원정출산’을 감행했던 황선 씨와 11월 19일 함께했던 콘서트에서 문제의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국제 형사 재판소 이야기를 한국 언론이 떠들썩하게 말했는데 북한 주민들은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주장이나 ‘진짜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북한에 있는 게 다행이라고 여길 것’이라며 황씨와 공개적으로 의견을 교환한 것이죠. 최근 6차례 방문한, 북한의 ‘핫 한’ 모습을 많이 보았다고 주장하는 신 씨입니다. ‘재미교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시리즈에서는 내일 먹을 죽이 없어 굶어 죽는 아이들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평양의 유경 호텔, 금강산 호텔, 나진, 선봉 같은 곳을 돌아다니며 ‘생각보다 괜찮은 북한의 서비스 인프라 경험’을 논합니다. 그리고 서로 간의 정치, 문화적인 차이가 있지만 생각보다 그 나라도 살만한 곳일지도 모른다는 식의 ‘내재적 접근론’을 제시했습니다. 신 씨가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어 둔 사진들 속에는 연출이라도 된 듯 평화로운 현지 가이드의 모습과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 평양 모란봉 공원 주민들이 함께 춤판을 벌이는 모습 등이 나타납니다. 고도로 통제된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미국 시민인 신씨가 자유롭게 여행을 했다는 사실은 우려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그 동안 남북 협력 사업을 진행하려고 하는 예술가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같이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친밀감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 씨도 미국에서 성악 박사를 한 사람으로 오랫동안 레슨과 연주 무대에 섰던 사람입니다. 예술가들의 현지 여행은 보통 사람들과 달리 현장의 생생한 감성과 목소리를 가슴 깊이 체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프랑스 기행 같은 작품집도 투명한 감성을 지닌 문인의 입장에서 세밀하게 써내려 간 현지 여행담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은 쉽게 느끼지 못하는 문화론적 시각, 고유의 입체적 판단으로 지나친 편견도, 옹호론도 작용할 수 없는 ‘인간 보편의 감각이 있는 그곳’을 말합니다. 유대인이면서 팔레스타인 국적을 취득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던 지휘자 바렌보임의 행보도 그런 예술가적 감수성과 보편성에 대한 희구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현지에 대한 시각은 그 대상이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북한은 엄연한 폭압적 독재정권입니다. 수많은 문화, 종교인들이 죄 없이 피를 흘려야만 했고, 제 국민도 건사하지 못하는 국가 수반이 ‘핵 건설’과 ‘경제 건설’의 병진 노선을 추구한다며 끊임없이 상대방을 도발하고 있습니다. 국제 외교에서 소통과 협상의 기본 예의를 무시한 채 철저히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전술적 대응을 하는 집단이기도 합니다. 신 씨는 이 북한이라는 공간에서 그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면들을 충분히 보고 돌아온 사람입니다. 현지에서는 계급과 성분이 보장되지 않으면 활용할 수 없는 서비스들을 최첨단의 미국에 사는 그녀가 경험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름 소박하고 인간적이었다’며 후기를 남긴 것이 과연 진정한 ‘내재적 접근’인지는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러나 달리 볼 부분도 있습니다. 신 씨 같은 인물이 우리 사회에 주는 충격이 없으려면, 북한을 향한 시각이 다각화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현재 5.24 조치로 인해 북한과의 교류는 전면 중단된 상태입니다. 무조건적인 화해와 인도적 협력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적어도 상대방의 현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접근은 필요합니다. 인류학자들도 참여관찰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신 씨 정도의 ‘정보 제공자’로 인해 놀라지 않으려면 북한을 어떻게 관찰할 것인지 고민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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