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2월27일] 루이비통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유제니 황후는 가방가게 종업원 루이 비통(Louis Vuitton)을 어여삐 여겼다. 짐을 잘 쌌기 때문. 귀부인들도 그를 찾았다. 그가 꾸린 짐에서 나온 드레스는 장거리여행을 거쳤어도 구김이 없었다. 루이는 1854년 2월27일, 아예 자기 가게를 차렸다. ‘명품 루이비통’의 출발이다. 타원형 일색인 기존 제품과 달리 그는 사각형 트렁크를 선보였다. 마차나 열차의 적재 공간 낭비를 최소화한 그의 제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모방품이 나오자 아들인 조르주는 차별화를 위해 부친의 이니셜 ‘L’자와 ‘V’자가 겹쳐진 디자인을 만들었다. 디자인은 루이비통의 상징이 됐다. 기업이 로고를 만든 것도 이 때가 처음이다. 루이비통은 적극적인 합병전략으로도 유명하다. 루이비통이 속한 LVMH그룹이 1999년에 시도했던 구찌에 대한 적대적 합병은 실패로 끝났지만 반전을 거듭해 가장 극적인 인수합병(M&A) 사건의 하나로 회자된다. 명품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명품회사를 먹는 전쟁은 요즘도 지속하고 있다. 인수를 통해 덩치를 키운 LVMH그룹 내 기업은 약 50여개. 루이비통을 선두로 크리스찬디올, 모에샹돈(주류), 태그호이어(시계), 쇼메(보석) 등이 포진한다. 2005년 그룹 매출은 140억유로. 전년 대비 11% 늘어났다. 총매출에서 아시아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지 판매와 동양인 관광객의 현지 구매를 합쳐 약 7할에 이른다. 아시아 지역 매출이 늘어나는 통에 명품회사들의 고민이 깊어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당장은 돈을 벌어 좋지만 희소성이 사라지고 유럽과 미국 최상층 소비자들의 관심도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들이 너무 많이 찾는 통에 ‘수질관리’가 걱정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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