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흘렀지만 국민들의 의식과 생활 속에 위기의 잔상이 뚜렷이 남아 있었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지난 97년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위기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20대 사회 초년 시절 위기를 경험한 30대의 경우 3명 중 2명꼴로 재발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의식은 부동산 폭등, 양극화 심화 등 최근의 불건전한 경제흐름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다수 국민들은 외환위기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다만 외환위기는 기업 경쟁력 강화, 사회 투명성 증대 등 우리 경제ㆍ사회 발전의 일정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내려졌다. ◇10명 중 6명 “위기 재발할 수 있다”= 응답자의 58.9%가 ‘IMF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답했다. 반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36.8%에 불과했다. 이는 국내 경제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무너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도 함께 묻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외환위기 재발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계층도 고학력자와 자영업자가 많았다. 또 30대의 67.5%가 재발가능성이 높다고 봐 젊은 층의 경제 불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외환위기 때 취업난ㆍ폐업 등의 아픔을 겪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본부 부장은 “외환위기 재발가능성이 크다는 인식은 결국 현재 경제흐름과도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가 크게 회복되지 않는 한 외환위기 재발에 대한 우려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사회에 부정적 영향=외환위기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다. 외환위기가 한국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끼쳤다고 판단하는 국민이 다수를 차지했다. 54.1%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외환위기 뒤 한국사회의 방향도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이 59.3%에 달했다. 부정적인 판단은 한나라당 지지자(64.3%), 보수층(66.4%)이 높았다. 반면 진보층과 열린우리당 지지자는 각각 44.5%, 50.0%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해 현 정권에 대한 지지세력 및 이념 성향에 따라 인식의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현재 국정운영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변한 응답자 중 63.5%가 외환위기 뒤 한국사회 방향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국민의 전반적인 삶의 질이 떨어졌다는 답도 64.1%에 달했다. ‘외환위기가 소비를 건전하게 유도했는가’라는 질문에도 55.6%가 부정적으로 답변했고 49.8%가 미국ㆍ일본 등 선진국과의 경제관계도 더 나빠졌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외국자본에 대한 인식은 ‘좋아졌다’와 ‘나빠졌다’가 각각 44.1%와 46.0%로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먹튀’ 논란을 일으켰던 론스타 등 일부 외국자본의 영향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소폭이나마 더 많았다. ◇국가 신인도, 기업경쟁력 향상 계기=하지만 외화위기가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 개선, 국민의 선진 시민의식 제고, 경제 전반의 투명성 증대, 기업 경쟁력 강화 등의 순기능을 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눈에 띄는 것은 긍정적인 평가 부문에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층의 응답비율이 높았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은 대외신인도 개선(64.5%), 경제 투명성 개선(62.8%), 좋아진 기업 경쟁력(70.3%) 등에 평균 이상의 호평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에 대해서는 58.0%가 ‘좋아졌다’고 답했다. 나빠졌다는 평가도 37.0%에 달했다. 또 ‘시민의식이 좋아졌다’는 응답도 53.8%였다. 시민의식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학력이 높고 고소득일수록 많았다. 경제 전반의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52.7%로 과반수를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