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보국' 정신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한 기업인들이 배임죄 공포에 떨고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적용되는 배임죄에 걸리면 어떤 기업인도 범죄자로 내몰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학계를 중심으로 기업인의 경영 판단행위에 대해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하는 현행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경영상 판단을 처벌하는 것은 사법권 남용이자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켜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미래지식성장포럼이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배임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주장들이 쏟아졌다. 이경렬 숙명여대 법대학장은 "경영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법원에 경영 판단의 옮고 그름을 가리도록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경영 판단에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사법권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경영 판단에 관한 이론은 현재 형법상으로 의견이 엇갈리며 상사법 판례에서도 아직 확실한 논리가 구성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박민영 동국대 법대 교수도 "기업인에 대한 현행 배임죄 관련법은 최근 경제민주화 논의에 편승해 자칫 '기업 때리기'로 변질될 수도 있고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다른 기업들이 실패가 두려워 망설일 때 경영진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에 뛰어들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것을 두고 개인적 이득을 취하려다 손실을 끼친 것으로 치부해 처벌하는 것은 국가 경제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배임죄는 그동안 범죄 구성요건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원칙이 없어 법의 잣대가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형법에서는 배임죄를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본인 또는 제3자가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해 손해를 가한 경우'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에는 고의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검찰이나 법원의 자의적 해석이 충분히 개입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업인에게 적용되는 배임죄의 무죄율이 전체 형사범죄에 비해 평균 5배나 높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는 사법 당국에 대한 불신은 물론 정상적인 기업활동까지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결국 이러한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배임죄의 적용기준을 더욱 명확하게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배임죄를 도입한 해외 국가들도 법리 적용에 있어서는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합리적 경영 판단이라면 회사에 손해를 끼치더라도 경영진에게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
강동욱 동국대 교수는 "타율적이고 과도한 통제와 간섭은 기업의 대외적인 경쟁력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다"며 "기업인의 경영 실패에 대한 형사책임을 확대 적용하는 것은 기업가정신 훼손과 소극적인 기업 경영, 투자 억제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만큼 정당한 경영행위에 대해서는 배임죄 적용을 배제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