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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대란' 현장은…
계속 쓰자니 돈 걱정… 자르자니 일손 걱정… 中企사장도 '숯덩이'"정규직 전환할 형편안돼 내보냈더니 공장이 멈출 판"직원들도 일손 놓고 술렁 "납기 맞출수 있을지 막막"기업끼리 인력 맞바꾸는 편법 고용 사례도 잇따라
수원=윤종열
기자 yjyun@sed.co.kr
대전=박희윤기자 hypark@sed.co.kr
울산=유귀화기자 u1@sed.co.kr
신경립기자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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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찾은 경기도 안산공단의 전자부품 업체 A사. 세척과 포장공정이 진행되는 공장 2층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깥의 굵은 빗방울 소리를 뚫고 공정 책임자가 젊은 근로자 3명에게 큰 소리로 작업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이들 직원은 아직 근무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듯 주의사항을 경청하고 있었지만 책임자의 표정에는 답답하고 짜증 어린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 직원은 며칠 전부터 출근한 파견근로자다. A사는 40여명의 생산직 가운데 7명을 인력업체에서 받아 후선 라인에 투입해왔는데 지난 6월 말 갑자기 인력 3명이 교체되는 바람에 정상적인 공장가동에 적지않은 혼란을 겪고 있다.
이 회사 이모 사장은 "인력공급 업체 측에서 계약기간 2년 만료를 이유로 부득이 해고한 것으로 안다"며 "한두 명씩 파견직이 바뀌는 일이야 있지만 전체 파견인력의 절반가량이 갑자기 바뀌다 보니 작업훈련을 다시 해야 하고 업무속도도 늦어져 생산차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비정규직법 쓰나미가 전국의 주요 공단에 휘몰아치면서 당사자인 비정규직 인력들은 물론 중소기업 사장들까지 정상적인 공장가동에 어려움이 크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업계에서는 비정규직의 70% 이상이 종업원 수 30인 미만 기업에서 일해 영세기업일수록 거센 후폭풍을 맞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불황으로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려온 중소기업들은 치솟는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정규직 전환은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막상 지난 2년간 일해온 숙련된 직원들을 내보내자니 공장가동에 심각한 차질을 빚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새로운 일손이야 용역회사 등을 통해 구해볼 수 있다지만 공정을 잘 알고 일을 잘하는 사람은 좀처럼 찾기 어려워 일정 수준의 생산성을 유지하지 어렵다는 것이 업체 사장들의 한결 같은 하소연이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기업 입장에서도 다년간 숙련된 노동자를 해고할 경우 생산성과 효율성이 저하되고 새로운 인력을 채용해 별도의 교육을 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인천 부평공단에서 만난 김모 사장은 연신 담배를 피워대며 "정규직으로 전환할 돈은 없고 숙련공들을 내보내자니 공장이 멈춰 설 판국이라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8년째 휴대폰 부품업체를 운영해온 김모 사장은 이달부터 계약기간 2년이 만료되는 70여명의 비정규직을 단계적으로 내보내야 할 처지에 몰려 있다.
회사 장부를 앞에 두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최근 해고 쪽으로 가닥을 잡은 김 사장은 6월 말 각 조립라인 반장들에게 직원들에 대한 엄격한 근태관리를 지시했다. 비정규직 사원들을 내보기 위한 '명분 쌓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로 30대 가정주부들로 구성된 비정규직 사원들은 이달부터 출근시간인 오전8시30분에서 단 1분이라도 늦으면 바로 지각으로 처리되고 3회 이상 되풀이되면 바로 해고 처리된다는 통보까지 받은 상태다.
시화공단에 있는 전자부품 도장업체 B사 사장의 사정은 더 딱했다. 직원 5명으로 회사를 꾸려온 영세업체 B사는 전직원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했다. 수주가 꾸준히 발생하지 않고 발주업체들이 그때그때 물량을 주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3개월 또는 6개월 단위로 비정규직을 두는 편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중 한 명만은 수년째 계약을 유지해오며 회사 사정과 공정을 잘 아는 숙련공이었다. 하지만 1일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의 여파로 유일하게 일 잘하고 숙련도가 높은 그 한 사람을 내보내야만 했다.
B사의 이모 사장은 "회사가 워낙 영세하다 보니 정규직을 고용할 형편이 안 돼 부득이 대부분의 직원들은 단기 계약을 하고 기간이 지나면 내보내왔다"며 "일 잘하는 한 명만 2년 가까이 근무해왔는데 2년 계약기간이 끝나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줄 사정은 안 되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최근 내보냈다"고 수심에 가득찬 얼굴로 말했다. 이제 남은 4명은 모두 B사에서 일한 지 3개월이 채 안 된 신참. 작업장을 믿고 맡겼던 직원을 스스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 사장은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앞으로 주문물량의 납기를 맞출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처럼 살벌한 분위기는 생산성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부품 제조업체인 B기업의 경우 전체 종업원 129명 가운데 비정규직이 70명인데 술렁거리는 분위기 때문에 일손을 잡지 못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회사 측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이 유예되지 않을 경우 이들 대부분의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계약 만기가 돌아오는 직원은 적더라도 2년 계약이 끝나면 해고될 운명이라는 생각에 직원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면서 생산성도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이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라며 "비정규직 문제가 어떻게 결론 날지 모르지만 생산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비정규직 문제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일각에서는 2년 계약이 끝난 직원들을 편법으로 고용하는 사례도 적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도 어렵고 숙련공을 내보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공단 내 기업들끼리 서류상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를 맞바꾸기도 한다"고 전했다. 멀쩡히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직원이 서류상으로만 해고돼 인근 업체로 옮긴 것처럼 꾸민다는 말이다. 이 관계자는 "궁지에 몰린 중소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불법을 저지르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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