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이루어진 대북 송금은 청와대와 국정원, 현대그룹 등의 고위관계자가 대거 개입해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또 대북 송금액은 4억5,000만달러로 잠정 집계됐다.
대북송금 의혹사건을 수사중인 송두환 특별검사팀은 5일 김윤규 현대상선 사장과 최규백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을 외국환거래법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서울지법에 접수된 공소장에 따르면 김 사장은 2000년 6월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과 이익치 전 현대증권 사장의 지시를 받아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과 김보현 3차장, 최규백씨 등 국정원 인사들의 도움으로 산업은행에서 대출 받은 2,335억원을 미화 2억달러로 환전,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에 개설된 북한쪽 3개 계좌에 송금한 혐의다. 이기호 전 청와대 수석과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은 산은대출 과정에서 도움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김 사장은 또 정몽헌, 이익치, 김재수(당시 현대 구조조정본부장)씨 등과 공모, 2000년 6월 초순께 5,000만달러를 현대건설 런던지사를 통해, 다시 1억 달러를 현대건설 싱가포르 지점을 통해 각각 북한측 계좌에 보낸 혐의도 받고 있다.
최씨와 김 사장은 이외에도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남북교류협력법 위반) 1억달러를 추가로 보내는 등 2000년 6월9일부터 같은 달 12일까지 남북 경협사업에 대한 대가로 모두 4억5,000만달러를 북에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특검팀 관계자는 “오는 9일 만료되는 공소시효의 유지를 위해 두 인사를 기소했으며 임동원, 박지원, 정몽헌씨 등에 대해서는 보강조사를 거쳐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공소장에 등장하는 `송금` 관련자는 박지원 전 장관을 비롯해 모두 12명이다.
김종훈 특검보는 “공소장에는 송금이 대북경협 사업의 대가로 나와 있지만 공소장을 제기함에 있어 기술적인 처리에 불과하며 대가성에 대한 결론은 아직 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특검팀은 이날 현대그룹 대출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는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소환, 조사했다. 특검팀은 한 전 실장을 상대로 2000년 6월 이근영 당시 산은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현대상선에 대한 대출을 부탁했는지 여부 등을 추궁했다.
하지만 한 전 실장은 “이기호씨로부터 현대그룹 유동성 위기에 대한 얘기는 들었지만 이근영씨에게 전화를 걸어 현대상선 대출을 부탁한 사실이 없으며, 이 돈이 북으로 간 사실도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또 남북정상회담 개최 직전인 2000년 6월3∼4일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이 일정조정을 위해 극비 방북한 사실을 확인, 구체적인 경위를 파악중이다. 김종훈 특검보는 “임 전 원장의 방북은 당시 회담 추진위원장이었던 박재규 통일부 장관도 몰랐을 정도로 극비리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또 박지원 당시 문화부장관 비서 출신으로 2000년 3∼4월 싱가포르 등지에서 이뤄졌던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예비접촉 과정에서 박 전 장관을 수행했던 하모씨를 소환, 조사를 벌였다. 특검팀은 99년12월부터 2000년1월 사이에 3억원이 하씨의 계좌로 입금된 뒤 연결계좌를 통해 일부 뭉칫돈이 다른 계좌로 빠져나간 흔적을 포착, 하씨를 상대로 자금 출처와 행방을 추궁했다.
특검팀은 이르면 내주초 박 전 장관을 소환, 남북정상회담 준비 및 대북송금 경위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김한진기자 siccu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