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앞다투어 외채를 끌어쓰다가 금융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감독기능 부재가 도사리고 있었다. 금융 감독기능에는 한치의 허점도 없어야 된다는 것은 환란의 교훈이다. 당국도 감독업무에 최선을 다할 것으로 국민들은 믿고 있다.그럼에도 이같은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드러났다. 우량보험사로 알려졌던 대한생명에 대한 자산실사결과 부채가 자산보다 2조8,000억원이상 많고 부실계열사 대출도 2조원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총수가 탈법행위로 구속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부실과 탈법도 문제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당국의 부실감독이 한몫을 했다는 의혹이다.
대한생명의 부실대출이 급증한 것은 지난해인 것으로 밝혀졌다. 환란이전이 아니다. 환란의 뼈아픈 교훈을 딛고 64조원의 세금을 퍼부어가면서 금융구조조정을 추진하던 때였다. 당시 감독기관인 보험감독원이 정기검사를 면제시켜준 것이 회사측이 엄청난 부실을 양산하는 결정적인 빌미가 됐다는 것이다.
정기검사를 면제받으려면 종합평가에서 AA등급을 받아야 되나 이 회사는 지난해 A등급밖에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당시 보험감독원장이 재량으로 면제시켜 주었다고 한다. 정상적으로 검사만 했다면 지난해에 부실이 더 커지는 것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더욱이 지난해 7월에는 부실화가능성을 감지했지만 마땅히 해야할 특별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알고도 부실을 방치한 셈이다.
당시 회사측이 외자유치를 추진하고 있어 감독권을 제대로 행사 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정상적인 검사업무가 외자유치협상에 걸림돌이 된다고는 볼 수 없다. 이쯤되면 보험감독원장 선에서 그만한 재량권 남용이 가능한 일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관련 부처와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책임자를 검찰에 고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첫 사례이자 이례적이긴하나 당연한 조치다. 같은 금융당국을 검찰에 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않겠지만 금융감독업무의 선진화를 위한 고통이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할 것이다. 금융 감독기능과 책임한계를 가늠하는 잣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만일 책임소재가 밝혀졌는데도 유야무야 된다면 이 회사를 매각하면서 1조원 이상의 국민세금을 투입하는 것도 당연히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