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찌든 대한민국] 건설·해운 부도 확률 화학의 8배… 신용양극화 심화

■ 금융안정보고서
은행 단기대출에 목매고 비은행은 고사 직전
금융소외 20대는 고리 대부업으로 내몰려



30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2013 찾아가는 희망취업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게시판의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취업난 심화로 이들의 상당수는 은행이 아닌 대부업체 등의 문턱을 넘고 있는데 30%대의 높은 대출금리 탓에 신용의 악순환은 이어지고 있다. /김주성기자

3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ㆍ기업ㆍ금융회사 모두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양극화'다. 경기부진이 장기화하고 은행의 몸 사리기까지 극심해지면서 신용양극화(credit divide)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나마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돈줄이 돼야 할 비은행 금융회사는 저금리와 정부규제로 인해 성장성과 수익성이 모두 추락하면서 고사 직전에 몰렸다.

◇건설ㆍ해운 부도 확률 화학의 8배=보고서를 보면 국내은행의 대기업 익스포저 가운데 21%에 이르는 48조1,000억원이 부실징후, 즉 잠재위험 여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기회복이 지연되면서 조선ㆍ건설ㆍ해운업종은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은이 예상부도확률(EDF)을 계산한 결과 ▲건설업 9.1% ▲해운업 8.5% ▲조선업 5.9% 등으로 상대적으로 상황이 좋은 화학(1.2%), 기계(2.1%), 철강(2.7%), 전자(2.9%), 자동차(3.2%) 등과 비교할 때 건설업종의 예상부도확률은 화학의 거의 8배 수준에 달했다.

EDF는 과거 업종별 부도기업의 자산과 부채 차이와 비교해 부도 위험을 추정하는 모형이다. 개별 업종별로 보면 건설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충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57%를 차지하고 영업 현금흐름으로 단기차입금 상환과 이자비용도 대지 못하는 기업은 71%에 달한다. 이자보상비율과 현금흐름보상비율이 모두 100% 미만이 기업은 46%다.

해운업은 지난해 말 현재 자기자본비율이 2년 전의 절반인 16%로 떨어져 자본잠식이 우려되고 있으며 유동비율도 68%에 그쳤다. 조선업은 전체적으로 수익성이 크게 저하된 가운데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평균 5.1%이지만 상위 3개사(5.5%)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은 이미 적자(-2.9%) 상태를 보여 격차가 큰 상황이다.

◇은행은 단기대출 '맴맴', 비은행은 영업붕괴=은행은 자산건전성이 양호했지만 자금중개 기능은 사실상 포기했다. 성벽은 잘 쌓았는데 전쟁터에 나설 생각은 없는 셈이다. 지난해 은행의 중소기업ㆍ대기업 대출은 만기 1년 이하 비중이 각각 72%, 59.1%로 전년 대비 2.6%포인트, 6.6%포인트 올랐다. 돈 굴릴 곳 없는 은행이 수신금리를 낮추면서 시중자금은 비은행으로 흘러 들어갔지만 비은행 사정은 더 딱하다. 보험회사는 금리하락으로 이자 역마진이 확대되면서 경영건전성이 하락했고 신용카드회사는 정부규제에 묶여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1조3,000억원을 기록, 글로벌 금융위기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저축은행은 구조조정이 일단락됐지만 살아남은 79개 저축은행 연체율도 상승세를 지속하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BIS자기자본비율도 감독지도 기준(5%)에 못 미치는 저축은행이 12%나 돼 추가 구조조정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예수금 대부분을 중앙회 예치금으로 운용하는 상호금융조합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21.3% 급감했고 고정금리를 지급해야 하는 중앙회도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대 은행 막히면 30% 고금리 대부업체 직행=저축은행ㆍ카드사 등 비은행 금융회사의 가계신용대출은 담보능력이 떨어지고 신용등급이 낮은 취약계층이 많이 이용한다. 하지만 지난해 이들 비은행의 가계신용대출 증가율은 2%로 뚝 떨어졌다. 2010년(12.7%)이나 2011년(17.8%)과 비교하면 제자리걸음이나 마찬가지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급증하는 연체율에 건전성 관리에 들어간 것이겠지만 금융소외층은 저축은행ㆍ대부업체로 밀려났다. 비은행금융회사 복수채무자(2개 이상 금융회사 대출)의 대부업 이용비중은 2010년 6월 말 18%에서 2012년 말 25.3%로 대폭 상승했다. 비은행 신용대출을 이용한 30세 미만 청년층은 48.3%가 30% 이상 금리를 부담하는 저축은행과 대부업을 이용했다. 30세 이상 중ㆍ장년층이 19.6%인 것과 비교하면 2배를 훌쩍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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