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창] 그리스 사태의 구조적 난제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우리나라는 장롱 속 금까지 모아가면서 외환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고액연금을 받으면서 빚을 못 갚겠다는 그리스의 태도를 보며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는 국민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이 1,800원까지 올라가지 않고 1,000원에 머물렀으면 어떻게 됐을까. 수출을 늘리지 못해 긴축과 실업을 오랜 기간 감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 사태는 감정적 차원을 넘어서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최근의 그리스 사태는 유럽 통화의 통합에서 비롯됐다. 경쟁력이 다른 국가들이 서로 통화를 단일화하면 경쟁력이 강한 중심국가에서는 통화가 저평가되고 경쟁력이 약한 주변 국가들의 통화는 반대로 고평가된다. 각국의 저평가와 고평가의 정도 차이가 클수록 단일통화 체계는 불안정해진다. 유로존이 생겨날 때 체력이 비슷한 국가들로 구성돼야 했지만 현실은 편차가 큰 북유럽과 남유럽이 함께 속해 있다. 그렇다 보니 경쟁력이 강하면서 통화가 저평가된 독일은 급성장하고 그리스나 스페인은 통화 고평가로 국내 버블을 키우게 된 것이다. 그리스가 부채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도 유로화에 묶여 있다 보니 고평가에 시달리고 있다.

고평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긴축으로 경제체질을 바꾸면 된다. 하지만 금융역사를 보면 이처럼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영국은 지난 1914년 1차 대전 때 금본위제에서 이탈했다가 1919년 복귀했다. 임금상승으로 생산비가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환율을 전쟁 전 수준으로 돌리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다. 영국은 1925년 1파운드당 4.86달러로 금본위제로 복귀했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지속적인 실업과 긴축정책은 불황을 심화시켜 1931년 결국 금본위제를 이탈하게 됐다.

고평가를 긴축으로 대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설상가상으로 현재 남유럽은 긴축으로 대응할 만큼 경제구조가 신축적이지도 못하다. 생산비 증가 혹은 생산성 하락에 대응해서 임금을 낮추고 긴축을 하는 시스템이어야 하는데 경제구조가 신축적이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이 과정 모두 마찰이 크다. 그리스는 국민투표까지 갔다. 홍콩이 달러페그(peg·자국 통화 가치를 달러 기준으로 고정시키고 기타 통화의 환율은 미 달러화 대 기타 통화의 환율 변화에 따라 자동 결정되는 방식) 시스템을 잘 유지하는 것은 국내 경제구조가 유연하기 때문이다.

각국 간 재정이 통합돼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채권단이 그리스의 재정을 지원해주기보다는 오는 2018년까지 긴축을 통해 기초재정수지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5% 흑자로 맞추라고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단일통화의 현실은 참여국들의 체력이 비슷하지도 않고 경제구조도 경직적이며 재정은 통합돼 있지 않다. 해법은 유럽연합이 계속 돈을 대주든지, 그리스가 끝없는 긴축을 하든지, 아니면 탈퇴하는 것이다. 그리스가 추가 지원과 긴축의 중간길을 택하면서 현재 국면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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