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이후 증시 부진으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는 돈이 빠져나가고 있지만 노후 대비를 위한 연금저축펀드와 퇴직연금펀드로는 자금이 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금펀드에 가입할 경우 2개 이상의 펀드에 분산 투자하고 해외 펀드를 적절히 포트폴리오에 편입해 과세 이연의 효과를 누릴 것을 조언했다.
11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연초 이후 국내 설정된 연금저축펀드(2000년 이후 판매된 개인연금펀드)로 3,405억원, 퇴직연금펀드로 4,331억원이 각각 순유입됐다. 같은 기간 공모형 국내 주식형 펀드(상장지수펀드(ETF) 제외)에서 1조4,013억원, 공모형 해외 주식형 펀드에서 5,157억원이 순유출된 것과 대조적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일반 공모형 펀드에서는 돈을 빼내고 있지만 연금펀드에는 꾸준히 돈을 넣는 셈이다.
손수진 미래에셋자산운용 퇴직연금마케팅본부 팀장은 "주식시장이 박스권에 갇혀 있어 여유 자금을 일반 펀드에 투자했던 고객들은 실망감에 돈을 빼내고 있다"며 "반면 개인연금·퇴직연금은 당장 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을 얻는 개념이 아니라 노후자금 마련을 위한 수단이므로 지속적으로 투자를 이어가는 듯하다"고 말했다.
국내 연금펀드 시장은 꾸준히 몸집을 불리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0년 말 5조840억원에 불과했던 연금펀드 수탁액(개인연금펀드+퇴직연금펀드 합계)은 올해 3월 말 기준 11조2,940억원까지 늘어났다.
특히 연금저축펀드의 경우 소득세법 개정에 따라 지난해 4월 신연금저축계좌 제도가 도입되면서 투자자들의 구미를 더욱 당기고 있다. 종전에는 투자자가 단일 상품에 투자해야 하고 한 운용사가 내놓은 펀드 안에서만 갈아탈 수 있었지만 신연금저축계좌에서는 계좌에 편입된 펀드 내에서 여러 운용사의 상품을 별도의 제한 없이 갈아탈 수 있다. 연간 납입금액 한도도 1,200만원에서 1,800만원으로, 의무 납입기간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됐다. 올해부터 소득공제에서 13.2%(지방소득세 포함)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연말정산 때 돌려받는 세금 혜택은 줄었지만 시중에 연금저축펀드에 맞먹는 세제 혜택 상품이 없기 때문에 꾸준히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이 지난해 4월 출시한 '아임유-평생연금저축' 누적 판매 계좌 수는 3만2,400여개(4월 말 기준)에 이르며 누적 잔액은 1,416억원에 달한다.
퇴직연금펀드도 저금리 장기화로 주목받고 있다. 은행이나 보험사에서 판매하는 퇴직연금 원리금 보장형 상품 수익률이 연 3% 수준에 불과하자 점차 실적 배당형인 펀드로 관심 축이 이동하고 있다. 확정급여(DB)형 가입자든, 확정기여(DC)형 가입자든 지금처럼 저금리가 장기화될 경우 퇴직연금펀드로 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연금펀드에 가입할 때 분산투자 원칙을 염두에 둘 것을 강조했다. 전용우 한국투자신탁운용 리테일영업본부 차장은 "하나의 펀드에 집중해서 투자하기보다는 가급적 두 개 이상의 펀드에 분산투자하는 것이 위험 관리 측면에서 효과적"이라며 "'주식형+채권 혼합형' 또는 '액티브형+패시브형' 식으로 서로 상관관계가 낮은 상품군에 분산투자하는 게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펀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국내 주식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된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해외 쪽으로 분산투자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손 팀장은 "해외 펀드를 연금펀드로 투자할 경우 매년 지불해야 할 15.4%의 세금이 자동 재투자돼 복리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선진국이나 이머징과 같이 특정 지역에 국한하지 말고 글로벌 우량 기업에 투자하는 글로벌 펀드가 유망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연금시장 발전을 위해 금융당국이 소득공제 한도를 지금보다 더욱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소득공제 한도가 개인연금과 퇴직연금 합산 기준으로 400만원에 묶여 있다. 퇴직연금에 가입한 직장인은 퇴직연금만으로 소득공제 한도 대부분을 소진해 개인연금에 가입해도 공제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일부 직장인은 퇴직연금으로만 소득공제 한도를 소진해 개인연금은 가입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며 "공제 범위를 연간 600만~800만원으로 늘려 국민들의 개인연금 가입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