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막틀 시간인 오전 7시30분. 서울 명동 서울은행 본점 지하3층 서일대학 강의실이 가득 메워진다. 전날의 피곤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듯, 눈은 조금은 거슴츠레 하지만 강의 시작과 함께 눈망울은 이내 또렷해진다. 이어 9시부터는 은행방송을 통해 10분여의 아침 영어방송이 행내에 울려퍼진다.해외매각을 앞둔 서울은행. 이 은행은 요즘 갑작스런 영어열풍에 휩싸였다. 물론 스스로 내켜서 하는 일은 아닐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배운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파란눈」 주인을 맞이하는 최일선 변화현장인 셈이다.
서울은행이 지난 19일부터 3개월여에 걸쳐 실시중인 영어회화 단기과정 연수에는 이미 정원이 가득 찼다. 나이 지긋한 지점장과 여직원들도 상당수 포함돼, 회화 한마디라도 익히는데 여념이 없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제일은행에서 더욱 거세다. 매각이 이미 확정된터라 이 은행 직원들의 「영어사랑(?)」은 어쩌면 가정보다 더 클지 모른다. 제일은행은 원래 저녁에만 개방했던 4층 어학실습실을 이제 아침에도 개방한다. 하루 100여명의 직원들이 이곳을 찾는다. 특히 요즘에는 매각이전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차장급 이상들도 간혹 눈에 뜨인다. 은행에서는 조만간 차장급 이상만을 대상으로 하는 새벽반을 따로 개설할 예정.
은행 보조로 독자적으로 학원에 등록하는 인원들도 늘었다. 40% 넘는 감원바람에도 불구, 학원에 다니는 인원이 계속 700명 이상을 유지하는게 이를 반증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러시아어 등 기타 외국어를 배우는 인원은 줄어드는 대신 영어를 배우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는 것. 이제 「미국주인」이 확정된 만큼 영어가 제일이라는 것이다.
서울·제일은행뿐 아니다. 외환은행은 가뜩이나 책임자급이 되려면 영어가 필수인터에 외국인 임원 2명을 맞이한 지난해부터는 외국어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