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은 총탄(BULLET)에서가 아니라, 투표(BALLOT)로부터 나온다」 (POLITICAL POWER DOES NOT COME FROM A BULLET, BUT A BALLOT.)는 말이 유난히 강조되던 시절을 거쳐서 우리는 오늘의 민주주의를 확보했다.5·16 쿠데타와 유신정권에 이어 12·12 군사반란과 5·17 정권찬탈로 이어지는 지난 37년간의 우리의 통치권력은 총구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래서 15대 대통령 선거를 통한 여·야간 정권교체의 의미는 통곡하리만큼 감동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필수적 절차임과 동시에 환희의 축제이며 핵심적 요체이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선거가 공정선거를 전제한 의미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선거라는 이름으로 호도된 부정·불법·불공정 투표는 오히려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암적 행사요, 민중을 자기 도구화하기 위한 형식적 권력 강취행위의 수단이었음을 우리는 무수히 경험해 왔다. 지방자치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서 우리는 각종 공직선거를 거의 해마다 치러야 하는 선거 일상화(日常化)의 시대를 맞아 있다.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는 공정선거 확보의 역사와 그 궤적을 함께해 왔다. 지난날의 우리의 선거에서 공명성을 앗아 간 것은, 관권 금권 지역감정 악용 흑색선전이었다. 하나의 선거가 끝날 때마다 「지난 선거는 일부 부정사례가 있기는 했지만, 진일보된 공명선거였다」는 것이 선거관리당국의 앵무새소리 같은 상투적 평가였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관권의 선거개입이 괄목하리만큼 줄어들었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오히려 더 지능화되고 노골화되는 경향마저 엿보이고 있다. 정치개혁의 출발은 공명선거 문화의 정착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첫째, 금권선거 타파를 위해서는 자원봉사로 위장된 불법선거운동을 법적으로 차단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둘째, 지역감정 악용에 대해서는 이를 반민족·반역사·반시대적 범죄로 규정, 선거관계법 이외에도 특별법 제정에 의해 통절히 다스려야 한다. 셋째, 흑색선전과 관련해서는 벌칙을 더욱 강화해야 함과 동시에, 선거와 무관한 경우라도 평소의 허위비방·중상모략 등의 투서, 진정인들을 먼저 철저히 조사해 엄중히 처벌하는 사정(司正)자세가 구축되어야 한다. 익명 가명의 모함을 사정의 근거로 삼는 악폐가 속히 불식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거부정에 따른 재선거를 수없이 치르더라도 공명선거 풍토를 확립해 나간다」는 정부당국의 강인한 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