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는 백이 조금이라도 남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유리할 때는 두텁게 마무리하는 것이 요령이다. 백4를 단단하게 잡으면서 중원에 떠있는 흑대마를 지긋이 엿본다. 흑5는 기분 좋은 자리. 형세가 유망하다면 중원의 흑대마를 한 수 들여 보강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으니 집을 챙기면서 버틸 요량이다. 백10 역시 기분 좋은 셔터 내리기에 해당한다. 이 수가 놓이자 상대적으로 흑대마가 더욱 약해졌다. 해설실에서는 서봉수 9단과 윤현석 8단이 끝내기 수순을 여러 모로 검토해 보고 있었다. 흑11을 두기 전에 천야오예가 10분간 뜸을 들였다. “또 한번 손을 빼려나?” “그럴 수도 있지.” 윤현석이 묻고 서봉수가 대답했다. 잠시 후에 서봉수가 워드프로세서 담당 한창규 기자에게 ‘다음 한 수’를 맞혀보라고 주문했다. 아마 5단의 한기자가 참고도1의 흑1, 3이 커보인다고 하자 서봉수가 깔깔 웃으면서 백4와 6을 놓아 보였다. 중앙 흑대마가 위험하다는 것. 이번에는 필자가 참고도2의 흑1을 제안했다. 백2면 흑3 이하 9가 통렬하다고 주장했으나 역시 서봉수는 깔깔 웃었다. 백은 2로 받아주지 않고 6의 자리에 막을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흑27이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온 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