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숨을 죽여야 했던 전세계 은행들이 이번엔 세금 공세에 더욱 어깨를 움츠렸다.
각국이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금융사의 부실 자산 등에 세금을 부과하는 '은행세'를 도입할 채비다.
가장 먼저 기치를 높인 곳은 독일.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독일은 내각 회의에서 은행세를 도입키로 결정했다. 이른바 '안정 기금'을 설립, 혈세로 구제받은 거대 금융사들로부터 연간 10억~20억 유로를 거둬들이겠다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인 의회 입법안은 오는 6월께 공개될 예정이다.
이날 외국인 고위인사로서는 이례적으로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장관이 독일 각료회의에 참석, 즉각적으로 은행세 도입에 지지 입장을 밝혔다. 라가르드 장관은 "프랑스도 곧 비슷한 내용의 은행세 도입안을 공개할 것"이라며 국가간 공조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프랑스는 독일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보험사와 헤지펀드까지 은행세 부과 대상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는 강경한 입장도 드러냈다.
라가르드 장관은 이 자리에서 "유럽연합(EU) 회원국 전체가 은행세를 도입하길 바란다"며 은행세 방안이 범 유럽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내각회의 직후 라가르드 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EU 회원국들이 모두 은행세를 도입하도록 촉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얼마 전 독일 무역흑자 문제로 양국이 논쟁을 벌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단단히 뭉치는 모습이었다.
은행세 도입에는 영국도 적극적으로 가세했다.
앨리스테어 달링 영국 재무장관은 이날 주요 20개국(G20)에 보낸 서한을 통해 G20 국가들이 전세계적 차원의 은행세 도입에 합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G20 재무장관들은 내달 워싱턴에서 열리는 정례회의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은행세 도입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유럽 언론들은 G20 재무장관 회담에서 기본적인 논의가 오간 후 오는 6월 캐나다에서 열릴 G20 정상회담에서 은행세 도입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은행세는 지난 1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들로부터 향후 10년간 900억 달러의 은행세를 징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논쟁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한편 은행세 도입에 대한 월가의 반발도 거셀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FT)은 오는 5월 총선을 앞두고 금융사들의 로비가 부쩍 활발해졌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로이즈은행은 최근 로비팀에 로비스트 두 명을 추가로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