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책임마저 면책되어서야

LG카드 사태를 산업은행의 위탁경영 방식으로 해결한 것은 정부의 고육책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LG카드사태는 기업의 부실을 국민세금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에서 언제쯤 벗어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정부는 LG카드의 위탁경영을 맡게 된 산은 측에 손실보전과 임직원 면책을 구두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법 44조의 `결산 순손실금은 적립금으로 보전하고 적립금이 부족할 때는 정부가 보상한다`는 조항에 근거한 것이다. 무리한 요구에, 무리한 반대급부인 셈이다. 산업은행 노조는 이 약속의 문서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LG카드 사건 수습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큰 맹점이다. 산업은행은 LG카드의 최대주주가 되는 순간부터 추가 손실을 떠안을 수 밖에 없는 `덫`에 빠져든 것이라고 봐야 하지만 그렇다고 경영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실이 발생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태에서 누가 책임을 갖고 경영을 할 것인가. 이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기 십상인 경영환경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지난 54년 설립된 산업은행은 개발연대였던 70년대까지 장기 시설자금의 공급기관으로서 수출산업 지원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80년대에는 중화학 투자, 90년대에는 해외투자에 적극 나서왔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동시에 한보철강 부정대출, 현대상선 대북송금 사건 등에 연루되었으며, 국민의 정부 시절 갖가지 벤처 비리의 진원지가 된 것도 사실이다. 또한 산업은행은 지난 2000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대우증권을 5,000억원에 인수했으나 아직 매각조차 못하고 있고, 2001년에는 `회사채 신속인수 제도`를 통해 하이닉스 등 부실 현대 계열사에 2조3,000억원을 지원했으며 이제는 LG카드 사태를 맞아 `관치금융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어쩔 수 없이 떠맡았다. 산업은행으로서는 시중은행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지워진 굴레와 같은 것이다. 산업은행은 27조원의 금융시장 피해가 예상되는 사태를 맞아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언제까지 정부의 정책적 실패를 덮어주고 재벌 계열사의 부실을 떠맡는 역할을 해야 하는가. 시대가 바뀐 만큼 산업은행의 역할과 기능도 변화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산업은행의 역할을 투자은행으로 축소해 민영화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산업은행의 비효율이 상당부분 관료적 운영과 관권 인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신용등급평가기관인 피치가 “LG카드의 회생을 이끌어낸 한국정부의 역할이 이론적으로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평가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손철기자 runiro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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