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사는 문형오(40ㆍ가명)씨는 며칠 전 출근길에 아찔한 광경을 목격했다.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던 자동차가 '쌩'하는 소리를 내며 과속을 하다가 마주 오던 차와 부딪힌 것이다. 문씨는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과속하는 차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교통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접촉 사고 등 경미한 사고에서부터 사망사고까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인천시 A아파트에서는 과속 후진하던 차량에 유치원생 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리 대규모 아파트 단지라도 자동차 속도에 제한은 없다는 데 있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는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로법은 일반인의 교통을 위하여 제공될 경우만 도로로 인정하는데, 아파트 단지 도로는 불특정다수가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속도제한을 둘 수 없자 정부는 단지 내 도로 설계를 강화하는 대책을 내놨다.
국토부는 지난해 잇따른 단지 내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인도와 차도를 분리하고 필요한 경우 횡단보도나 과속방지턱, 속도측정 표시판까지 설치할 수 있게 했으며 올해 안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아파트 단지 내 도로를 도로로 규정해 속도 제한 등 안전 기준을 적용하고, 보행안전 구역에서 사고가 날 경우 운전자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기혁 계명대 교통학과 교수는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를 그려놓더라도 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횡단보도가 아니다"라며 "시설물 설치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새는 수 천 세대가 들어가는 대형단지들도 많은 만큼 도로교통법 적용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교통안전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일준 가천대 도시계획과 교수는 "아파트 단지 내와 같은 생활공간에서 모든 초점은 보행자에 맞춰야 한다"며 "보행 안전구역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운전자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