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성폭행ㆍ살인 등 중대범죄 피해를 막지 못한 책임을 엄격히 묻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9부(오재성 부장판사)는 28일 중국동포 오원춘(42)에 납치ㆍ살해당한 피해자 A(28)씨의 유족 4명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정부는 A씨의 부모에게 각 4,890만여원, 언니와 남동생에게는 각각 1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오원춘은 지난해 4월 수원시 지동에서 자신의 집 앞을 지나던 A씨를 끌고 가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내 유기하는 중범죄를 저질렀다. A씨의 유족들은 "A씨가 납치됐을 당시 112에 신고를 했는데도 미흡한 초동수사로 결국 목숨을 잃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3억6,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긴급하고 중대한 상황에서 적절한 지령을 내리지 못하는 등 직무상 의무를 위반해 범죄를 막지 못한 책임이 인정된다"며 "다만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가해자에 있기에 국가의 책임 비율은 30%로 제한한다"고 판시했다.
미성년 성폭행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방자치단체에 물은 판결도 나왔다. 학교에서 장기간에 걸쳐 벌어진 학생들 간의 집단 성폭행 범죄를 뒤늦게 인지해 피해를 확대시켰다는 이유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한영환 부장판사)는 최근 서울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B양과 B양의 부모가 서울시와 가해학생 7명과 그 부모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피고들은 연대해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B양은 2011년 4월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반년 가까이 또래 남학생 7명으로부터 수차례의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다. B양의 부모는 범죄 피해의 책임을 가해학생과 그 부모뿐 아니라 서울시에도 물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B양의 학교 교사들이 보호ㆍ감독 의무 소홀로 피해 사실을 좀 더 빨리 인지하고 추가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며 "학교가 소속된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도 같은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