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서브프라임발 신용경색이 확산되고 있을 때 벤 버냉키 의장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향해 경제를 구해 달라는 절규의 목소리가 높았다. 아마도 버냉키 의장은 여리고(팔레스타인의 옛 영토)가 없어진 것 같이 금리를 인하해 신용경색 우려를 일거에 불식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버냉키 의장이 마치 야훼(여호와를 가톨릭에서 이르는 말)처럼 대중의 이러한 믿음을 거스르며 지난 몇 주간 잘 매니지해온 것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미국 중앙은행은 금융시스템의 연결고리로서 제 역할을 잘해 왔다. 새는 곳을 틀어 막았고, 유동성을 풀어 은행들에 자비의 손길을 내밀어 자금력을 든든하게 해줬다.
버냉키 의장은 뉴욕 월가의 투자자들ㆍ주택건설업자들ㆍ자동차 생산업자들, 그리고 돈을 풀라고 요구하는 언론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지만 꿋꿋하게 버텨냈다.
그는 지난 31일(현지시간) 잭슨홀 리조트에서 열린 FRB 하계 심포지엄에서 “금융회사나 투자자들의 자체적인 판단에 따른 결과를 중앙은행이 책임질 수는 없다.”는 원칙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금융시장 혼란의 여파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FRB의 정책결정에 있어 이 같은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여 FRB의 적극적인 역할에 무게를 실었다.
버냉키 의장은 어쩌면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시대가 남긴 유산에 인질로 잡혀 있는 형국이다. 시장에서는 그린스펀이 행했던 조치들을 취하길 기대하는 반면 경제학자인 그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FRB는 그린스펀 시대와 같은 정책을 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극복하고자 하는 신용경색 문제는 지난 시대 무모한 정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FRB의 첫 번째 의무는 통화의 재팽창 정책을 취함으로써 버블(거품)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체를 보호하며 특히 물가 안정을 꾀하는 것이다. 2ㆍ4분기 국내총생산(GDP)이나 기업이익 등 주요 지표는 호전된 상태다. 만약 또 다시 경제가 삐그덕거린다면 부시 행정부와 의회는 과감하게 감세 등 재정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감세 정책을 금기시하고 있지만 대권 도전자들조차 감세 정책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감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