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자제품 환경규제 맞서려면

김인환 <계명대학교 환경학부 교수>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선진국이 전기ㆍ전자제품에 대한 환경규제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EU는 지난 2003년 2월13일 ‘전기ㆍ전자폐기물기준(WEEE)’과 ‘전기ㆍ전자특정유해물질사용제한기준(RoHS)’을 지침(Directive)의 형태로 공표했다. WEEE에 따르면 우리 업체들은 오는 2005년 7월부터 EU로 수출한 전기ㆍ전자제품의 폐기물에 대해 제조자 수거의무를 지고 2007년 1월부터는 수거한 제품에 대한 재활용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RoHS는 2006년 7월1일부터 발효될 예정인데 이 지침은 납ㆍ수은ㆍ카드뮴ㆍ6가크롬, 그리고 브롬계 난연제인 PBBs, PBDEs 등 6개 유해물질을 함유한 전기ㆍ전자제품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들 6개 유해물질이 사용된 전기ㆍ전자제품은 유럽시장에 공급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유해물질 환경규제 기준의 강화는 자국의 국민건강과 환경보전을 목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환경규제 기준 강화의 이면에는 선진국들이 자국의 기술적 우위를 이용해 무역장벽을 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점이다. 이제 세계 전기ㆍ전자제품시장은 높은 환경규제 기준이라는 기술적 장벽 때문에 친환경 경쟁력이 높은 제품만이 살아남게 된다. 벌써 국내의 글로벌 전자업체들이 친환경제품의 생산을 선언했고 이로 인해 친환경 소재나 부품공급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업체들의 퇴출사태가 예고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이 이 같은 환경규제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제품설계ㆍ제조ㆍ판매에서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매출액의 2~3%를 투입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환경규제 강화에 대한 대응은 정부나 각 기업의 개별적인 접근으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이것은 정부와 기업, 그리고 관련 연구기관이 공동 대처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이다. 우선 첫째로 전자산업의 친환경 경영체제 구축을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전기ㆍ전자산업계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원료의 취득에서부터 제조, 사용ㆍ소비, 폐기물 관리의 전과정(Life Cycle)을 친환경적인 시스템으로 구축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ISO 14001의 인증을 받는 등 선진환경 경영기법의 도입이 이뤄지고 있으나 이러한 대기업의 친환경 경영체제를 협력업체로 확산하는 시스템이 부족하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정보 및 기술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대해 국제환경 규제 동향, 친환경 경영 노하우, 환경규제 대응전략 등에 관한 환경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개발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와 대기업은 관련 중소기업의 유해물질 대체기술 및 대체물질 개발과 친환경 공정기술 개발에 재정적ㆍ기술적 지원을 함으로써 중소기업의 경쟁력도 높이고 이를 통해 국내 전기ㆍ전자업계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윈윈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해물질 분석방법에 대한 기술개발을 위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유해물질을 가려내는 시험분석기술은 EU의 환경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선행기술이다. 현재 유해물질 분석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국내 공인기관은 극히 일부기관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리고 전기ㆍ전자제품을 구성하는 부품 및 소재별 시험 규격이 표준화돼 있지 않은 분야가 많다. 그러므로 정부는 산학연 공동으로 유해물질 분석방법, 시험방법 표준화, 분석능력 향상 등 기술개발을 추진해 이를 관련기업에 보급해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