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탈출구 찾던 근대 유럽

바닷길 통해 亞·阿문명 착취
■ 문명과 바다(주경철 지음, 산처럼 펴냄)


유럽의 해양 진출로 해적들도 늘어났다. 당시 악명높았던 해적 드레이크의 범선 '골든 하인드 호'

11세기 유럽에서 만든 세계 지도. 위부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묘사하고있다. 제일 위쪽 아시아의 동쪽 끝에 지상낙원을 그려 놓았다

1890년대 미국의 제독이자 군사 전략가인 알프레드 머핸(1840~1914)은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제패한다'고 했다. 근대 세계사를 보면 분명 맞는 말이다. 유럽인들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들어와 동남 아시아 각 지역을 장악하고 인도를 식민지화한 다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을 지배한 것이 우리가 배운 세계사의 전부다. 송대를 거처 명대 초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해상세력으로 세계와 소통했던 중국은 그러나 세계의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바다를 내 주고 말았다. 당시 가난했던 유럽은 풍부한 자원을 찾아 나서는 절박한 심정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항해에 나섰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이때 유럽을 '프롤레타리아 대륙'이라고 설명하면서 "유럽이 힘이 넘쳐서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부족한 것을 찾아서 해외로 나선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근대사는 바다를 지배한 서구문명에 의해 만들어졌다. 바다를 통해 동에서 서로 상품과 기술이 오가고 사상ㆍ종교ㆍ언어ㆍ동식물, 자원은 물론 심지어 병균을 퍼뜨리는 창구가 되기도 했다. 문명간의 상호 접촉은 긍정적인 차원의 교류로 정착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갈등과 지배로 이어지고 무력충돌, 경제적 착취 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동반하게 된다. 유럽은 이질적인 문명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강력한 무력을 앞세워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지배했다. 중국에서 발명한 총포와 화약으로 중국을 진압한 대목은 서양주도의 근대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바다로 나간 유럽은 해상항로를 통한 자유교역권을 확대해 나갔으며, 동인도 회사 등을 내세워 제국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이들의 해상 진출은 노예무역의 잔혹사와도 맥이 닿아있으며, 중국의 도자기 기술과 비단 직조기술 등 동양의 첨단기술을 한꺼번에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동양은 모든 것을 서양에 내 주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주 교수는 책을 통해 근대의 대항해시대는 처절한 폭력으로 점철된 시기라고 역설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전멸했으며, 1,000만명이 넘는 아프리카인들이 노예가 됐고, 열대지역 주민들은 저렴한 가격에 쌀ㆍ담배ㆍ바나나 등을 제공하기 위해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그 동안 다양한 지역문화와 수많은 언어가 사라지기도 했다. 저자는 서구 중심주의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수많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존 통설을 뒤집어 가면서 세계근대사를 재해석했다. 동서의 패러다임이 다시 움직이는 변화의 시점에서 그는 서구 중심의 세계화 질서 외에 다른 길은 없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평화를 모색하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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