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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한 색상의 실크 가운을 걸쳐입은 배우 한진희 씨가 심각한 얼굴로 화면에 등장한다. 분노에 찬 한씨의 눈빛은 곧 브라운관을 뚫고 나갈 기세다. 곧이어 배우 이혜숙 씨에게 고함을 지른다.
"작작 좀 써. 작작 좀. 하루 종일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나 보고. 데이터가 남아돌아?"
이혜숙씨도 지지 않고 앙칼지게 맞받아친다. "그래요! 남아돌아요. 난 데이터가 2배라고요."
한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급작스럽게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두, 두 배....? 리..리얼리(정말)?"
이제서야 시청자들은 이 영상이 TV드라마 '금나와라 뚝딱'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잠깐 한눈을 판 시청자라면 두 배우가 다투는 장면 이후에 흘러나오는 악동뮤지션의 '2배 송'까지 듣고 나서야 KT의 올레 All-IP 2배편 CF를 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후속편도 있다. KT가 새롭게 공개한 CF 역시 TV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인 배우 이종석과 이보영 씨가 등장해 맛깔 나는 연기를 펼친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를 통해 제품을 홍보하는 PPL(간접광고)을 거꾸로 비틀어 광고가 드라마를 품에 안은 셈이다.
최근 들어 유머 넘치는 패러디 광고들이 장마철 우울함을 달래주고 있다.
드라마를 차용한 광고는 물론 "단언컨대 뚜껑은 가장 완벽한 물체"라고 주장하는 팔도 왕뚜껑, "소셜 최저가를 모르기 전에는 잘 산 것이 아니라고" 꼬집는 위메프(인터넷) 등이 대표적이다.
팔도 왕뚜껑의 새 CF는 올 2월부터 방영중인 팬택의 '베가 아이언' 광고를 패러디 대상으로 삼았다. 베가 CF에서는 감미로운 중저음과 멋진 외모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배우 이병헌씨가 핸드폰을 감싸고 있는 금속을 찬양했다면 이 CF에서는 코미디언 김준현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뚜껑은 뜨거운 김을 두려워 않는 인내가 있고 어떠한 시련에도 (라면의) 맛을 지켜낸다"고 털어놓는다. 광고의 콘셉트는 물론이고 배경화면과 구도, 음악을 모두 패러디해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위메프 CF는 더 직설적이다. 배우 전지현씨가 '오늘도 쿠팡에서 잘 샀다'며 만족해 하는 CF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이 영상은 감칠맛 나는 욕설로 유명세를 탄 배우 김슬기씨가 등장한다. "구팔에서 싸게 잘 사는 줄 알았는데 글로벌 호갱(호구 고객)이 됐다"며 처절하게 부르짖는 김씨는 "소셜 커머스 최초로 최저가를 보장하는 위메프에서 잘 사자"며 욕설 잔치를 마무리 짓는다.
다양한 방식으로 드라마와 CF를 넘나들며 패러디된 이들 CF는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KT의'금뚝딱' 광고 동영상은 조회수가 30만에 이를 정도고 이를 재패러디한 시청자들의 UCC도 봇물처럼 등장하고 있다. 왕뚜껑과 위메프의 경우도 인터넷 블로그와 SNS를 통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패러디 광고는 소비자들의 주의를 끄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며 "이미 잘 알려진 내용으로 영상을 구성하는 만큼 주목도가 높다"고 말했다. 또 패러디 특성상 유머와 위트를 담을 수 있다는 점, 패러디 장면 속에서 제품 특징이 자연스럽게 돋보일 수 있다는 점 등이 패러디 광고의 장점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