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경영 벗고 본격 ‘영토전쟁’/철강산업

◎무한경쟁,세계진출 밑거름/시장분할따른 나눠먹기시대 끝/해외진출­구조조정 고부가화 박차「더이상 나눠먹기는 없다.」 국내 철강산업이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철강업체들은 지금까지 지켜온 각자의 고유영역에서 벗어나 다른 업체의 분야로 진출, 경쟁을 선언하는 한편 시장사수를 위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경쟁에서 탈락하면 21세기를 맞이하지 못한다』는 절박함이 기업들의 변신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에따라 생존을 위한 영토침범과 살아남기 위한 성벽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기로 업체가 열연강판을 생산하겠다며 나섰고 강관 전문기업이 판재류사업에 진출했다. 봉강공장은 철근보다 생산성이 높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있다. 국내 철강업체들을 상징하는 표현은 「보수경영」이었다. 이들 기업이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데 3년 이상 걸린다해서 이들의 별명은 「3년검토」였다. 사업영역 구분에 따라 시장을 분할해온 태평성대의 시대에 굳이 전쟁을 벌여가며 신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 그동안 국내 철강산업의 구도는 봉건사회의 그것이었다. ▲1개 고로(포항제철) ▲5개 전기로(인천제철, 동국제강, 한보철강, 강원산업, 한국철강) ▲5개 냉연·강관업체(동부제강, 연합철강, 현대강관, 세아제강, 신호스틸)등으로 영토를 나눠갖고 있었다. 따라서 기업들은 경쟁없이도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었고, 시장분할은 기업들의 경영에 「안전판」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영토 경계선이 이제 무너지고 있다. 한보철강은 전기로에서 나온 쇳물로 박슬래브 방식을 통해 열연강판을 생산하고 있다. 그동안 포철만이 열연강판을 생산해 왔다. 현대그룹 역시 인천제철을 통해 고로 방식으로 열연강판을 생산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강관업체인 현대강관은 냉연강판 생산에 참여키로 했다. 반면 냉연 전문업체인 동부제강은 강관생산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세아제강도 컬러강판과 냉연강판 생산을 계획중이다. 반면 고로업체인 포철은 지난해 10월 준공한 전기로(미니밀) 설비를 통해 열연강판을 생산하고 있으며, 최근 제2 미니밀 착공에 들어갔다. 고로업체가 전기로사업에 진출한 것. 포철은 삼미특수강의 봉강·강관사업을 지난 2월 인수, 본격적으로 특수강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기존 영역안에서의 구조조정도 눈부시다. 제품의 고부가가치화가 그것이다. 주로 전기로 업체들이 적극적이다. 강원산업은 부가가치가 낮아 원자재값도 감당키 어려운 철근 라인을 줄이고 있다. 대신 라운드바나 선재 등으로 생산품목을 돌렸다. 또 대부분의 철근 메이커들이 고장력 철근 등의 생산비중을 높이는 경향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의 영역파괴를 양적확장으로 본다면 이는 질적 고도화다. 구조 고도화의 방향이 종횡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철강업체들의 해외진출도 같은 맥락이다. 원자재의 안정적 확보와 시장 선점, 경쟁력 상실 분야의 생산기지 이전 등이 모두 해외투자의 요인이다. 철강 업체들이 이처럼 아성 무너뜨리기와 해외진출을 통한 구조조정에 대거 나서고 있는 이유는 기존의 생산체제와 구습 경영방식으로는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철강업체들의 별명은 「3년검토」에서 조만간 「즉각시행」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한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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