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글로 감독, 그녀가 '남성' 영화를 찍는 이유

■ 캐스린 비글로
피터 커프 엮음, 마음산책 펴냄


"그녀가 *장르 영화를 만드는 여성이라는 점은 도발적이지만, 그게 흥미로운 건 그녀의 영화가 관객에게 제대로 먹혀들기 때문이다." (영화제작자 에드워드 R.프레스먼)

할리우드에서 으뜸가는 여성 액션 감독으로 꼽히는 캐스린 비글로의 인터뷰집이 번역 출간됐다. 그녀가 작품 활동을 했던 약 25년간 각종 매체와 진행했던 인터뷰와 2010년 아카데미상 수상 연설 등 총 36편의 글이 책에 수록됐다.

180㎝의 훤칠한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 매력적인 얼굴을 지닌 이 감독을 설명하는 가장 흔한 말은 '가장 여성스럽지 않은 영화를 만드는 여성 감독' 정도가 되겠다. 모터사이클 갱이 소도시 촌뜨기들과 대결하는 내용의 첫 장편 '사랑 없는 사람들(1981년)'에서부터 에로틱하고 유혈 낭자한 뱀파이어 웨스턴 무비 '죽음의 키스(1987년)', 그를 2010년 오스카의 승자로 만들어준 압도적인 전쟁 영화 '허트 로커(2010)', 9·11 이후 10년간 이어진 빈 라덴 사살 작전을 그린 최근작 '제로 다크 서티(2012)'에 이르기까지. 그가 택하는 형태는 액션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남성 지향적' 장르 영화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감독을 오랜 시간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작품들에서 '여성'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 '여성' 감독인 자신을 따라다니는 가장 오래된 정체성이라는 건 분명 조금 질리는 일이리라. 실제 인터뷰집을 통틀어 가장 빈번히 던져지는 질문은 '당신 같이 아름다운 여성이 대체 왜 이런 영화들을 찍느냐'는 것이다. 감독은 "영화 연출을 젠더와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가 특정 종류의 소재에 더 적합하다는 인식은 고정관념일 뿐"이라고 일축하지만 말이다.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은 그 밖에도 많다. 비글로가 원래는 결코 대중적이라 말하기 힘든 개념미술 분야에서 촉망받던 화가였다는 사실이나 그가 만들었던 대부분 영화가 폭력과 위험에 매혹되는 인물들을 주역으로 내세운다는 점, 실제로 그가 "폭력이 관객에게 가하는 '충격'에 매료됐다는 걸 인정한다"는 점이나 자신의 작품에 좀 더 많은 관객이 들길 언제나 바란다는 사실 등이다. 전 남편 제임스 캐머런과의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는 글들도 적지 않아 영화마니아들의 관음증을 충족시켜줄 듯하다. 1만7,000원.

*장르영화: 서부극·공포영화·코미디영화처럼 분류 가능한 형식과 줄거리를 갖춘 영화를 일컬음. 일반적으로 할리우드 중심의 상업영화로 대변되긴 하지만 다른 예술 분야와는 달리 영화에서의 장르는 구분이 매우 모호하며 계속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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