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이러다 말겠지." 회의실을 나온 한 직원이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그러게 말야. 분위기 적당히 맞춰주다 보면 곧 시들해질 거야." 옆에서 듣던 동료들이 맞장구를 치기 시작한다. 겉보기에 조직 갈등이라곤 찾아 볼 수 없다. 때로는 화기애애하다. 언뜻 보면 잘 굴러가는 듯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온갖 문제가 들끓고 있다. 최고경영자나 고위 임원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획의 생명력은 오직 회의실에서만 빛을 발한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지만 회의실을 나온 직원들은 이내 콧방귀를 뀐다. 누구 하나 발벗고 나서는 이 없다. 그저 눈치만 볼뿐. 1914년 설립된 세계적인 컨설팅기업 부즈앨런해밀턴(Booz Allen Hamilton)이 최악의 조직 유형으로 꼽는 기업이다. 이른바 '순응저항형 조직(The Passive-Aggressive Organization)'. 부즈앨런해밀턴의 전 현직 부사장들이 쓴 '창조적 DNA를 이식하라'는 100여개국의 다양한 기업에서 끌어 모은 5만여개의 설문 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부즈앨런해밀턴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모든 기업을 몇 가지 조직 유형으로 나눠놓았다. 위기의 기업으로 꼽은 순응저항형 조직을 비롯해 ▦자유방임형(The Fits-and-Starts) ▦과다성장형(The Outgrown) ▦과도관리형(The Overmanaged) ▦민첩대응형(The Just-in-Time) ▦일사분란형(The Military Precision) ▦유연적응형(The Resilient) 등 7가지다. 순응저항형, 자유방임형, 과다성장형, 과도관리형은 허약한 조직에 속한다. 놀랍게도 저자들은 이 가운데 가장 나쁜 체질로 분류한 순응저항형 조직에 세계적인 잡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중 다수가 속한다고 꼬집는다. 순응저항형 조직의 증상은 어떤 것들일까.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내부의 불협화음이 심각하다. 의사결정은 자주 번복된다. 부서간에 정보가 거의 공유되지 않는다. 직원에 대한 보상은 업부 성과와 무관하게 주어진다. 문서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맞다, 맞아. 이거 꼭 우리 회사네."하며 무릎을 칠 항목들이다. 친절하게도 저자들은 이 같은 순응저항형 조직의 치료 방안까지도 적어놓았다. 모든 핵심요소를 철저하게 바꿔라. 외부에서 새로운 피를 수혈하라. 한번 내린 결정은 반드시 준수하라. 정보가 효율적으로 공유될 수 있도록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도화하라. 성과 평가 제도를 개혁하라. 저자들은 7가지 조직 특성들을 꽤나 자세하게 정의하고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에게 가장 흔한 유형은 명령과 통제를 기반으로 한 상명하달식 '과도관리형' 조직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조직은 구성원간 관계가 친밀하고 문화적 공통점이 많다. 제대로 동기부여만 되면 엄청난 변화도 가능하다는 게 저자들의 진단이다.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모든 기업은 유전자를 갖고 있으며 이 DNA와 체질은 조직의 실행력을 지배한다. 기업의 성패를 결정하기도 한다. 저자들은 다양한 조직 유형은 결국 ▦의사결정권한 ▦의사소통체계 ▦동기부여요인 ▦조직구조 등 4가지 조직 DNA가 어떻게 짜여져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탁월한 성과를 내는 건강한 조직을 유지하려면 자신의 기업 유전자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충고한다. 부즈앨런해밀턴의 수십년 컨설팅 노하우와 비법이 책 한 권 속에 알토란처럼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