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노무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삽화를 곁들여 `이라크 전쟁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분노와 지지를 이끌어냈다`고 제목을 달았다. 내용인즉 9ㆍ11 테러 이후 미국과 돈독한 외교적 관계를 유지했던 러시아가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고, 취임후 `마지못해 미국의 대외 정책을 지지했던` 노 대통령이 미국을 밀어주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국내 반전 운동과 `국익` 사이를 고민하며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지지하는 용단을 내렸다. 이에 대해 미국 보수 세력의 견해를 대변하는 언론은 `생각지도 않는` 지지를 얻어낸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 미국과 한국이 공감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두 나라 사이에 현격한 사고의 차이가 드러난 것이다. 한국에선 이제 전통적인 우방국을 지지하는 것 자체가 고민스러운 일이 된데 비해 미국의 일부 보수층에선 한국의 지지를 의외로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여론이 갈라진 국제사회는 이 전쟁이 끝나면 다음이 어디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 대통령은 “국내외에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 다음은 북한 차례라며 공격 가능성을 거론하는 근거 없고 부정확한 얘기들이 나돌고 있다”고 우려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한국, 일본, 러시아, 중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외교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했고,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이라크 다음의 선제공격 대상 국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미국 조야에서 이라크 다음에 북한이 문제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온 것은 사실이다.
이라크 사태의 경우 미국은 외교와 전쟁을 동시에 추진했었다. 저널지에 따르면 파월 장관이 유엔 외교를 하는 동안에 딕 체니 부통령이 이라크 공격을 준비했다고 한다.
한ㆍ미 관계가 아주 미묘한 시점에 있다. 북한 핵 문제 해결에 앞서 중요한 것은 한ㆍ미간 인식의 차이를 좁히는 일이다. 4월중 체니 부통령의 한국 방문과, 곧 이어질 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좋은 기회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교수는 얼마전 코리아소사이어티 모임에서 이렇게 조언했다. “노 대통령이 체니 부통령을 어떻게 설득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면 5월 정상회담도 성공할 것이다. 한국이 체니를 설득하는 방법의 하나는 정치인들이 초당적으로 미국을 지지하고, 북한에 경고하는 일이 될 것이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