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지키며 행진했더라도 다수의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였다면 시위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부(이창형 부장판사)는 장례식장 주변에서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사회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회원 김모(47)씨 등 4명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벌금 70만원을, 이모 씨 등 2명에게 벌금 5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 등이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일렬로 장례식장 앞에서 서울성모병원 정문까지 행진한 행위는 집시법이 정한 시위에 해당한다”며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띠고 일반인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장소에서 걸어가면서 불특정 다수의 의견에 영향을 주는 행위”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이들이 구호를 함께 외치지 않았더라도 시위가 아니라고 볼 수 없다”며 “집시법상 신고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학문, 예술, 체육, 종교, 의식, 친목, 오락, 관혼상제, 국경행사에 관한 `집회'이지 `시위'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또 "당시 준비한 현수막 내용은 단순히 고인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을 규탄하는 것이 주를 이뤘으며, 유족이 화장장으로 떠난 상황에서 행진했으므로 순수한 추모의 범위를 벗어나 관혼상제에 관한 시위로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김씨 등은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박지연씨가 지난해 3월 31일 사망하자 발인일인 4월 2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박씨의 죽음은 삼성에 의한 타살'이라는 취지의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신고 없이 집회 및 시위를 한 혐의 등으로 약식기소됐다.
이들은 벌금형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하면서 `박씨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침묵 속에서 진행한 것이므로 관혼상제에 관한 집회이고 이는 집시법상 신고대상이 아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