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5(화) 19:00
국제통화기금(IMF)과의 4·4분기 정책협의를 거치고나면 우리나라 경제운용의 큰 틀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IMF도 연례보고서에서 인정했듯이 한국의 금융·외환위기 처방을 잘못 찾은 탓에 극심한 경기침체와 그에 따른 실물경제 붕괴가 나타났으므로 그 타개책은 거꾸로 큰 폭의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내수부양과 통화공급 확대로 요약될 수 밖에 없다. IMF 휴버트 나이스 아시아태평양국장이 지난 14일 재정경제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경제의 운용 목표는 경기의 침체를 억제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재정적자를 통한 수요진작 정책이 차질없이 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내외 환경이 내수부양 우선으로 흐르고 있다=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해 고금리와 초긴축재정을 일률적으로 강요해온 IMF는 최근 연례 보고서를 통해 잘못을 인정하며 정책변화를 강력히 시사했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 14일 뉴욕 국제관계위원회 연설에서 『세계가 지난 50년이래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고있다』며 『전세계적으로 경기부양을 위한 공동대응 조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아시아 경제가 몰락한 이후 각국이 너도나도 수출확대의 대외지향적 정책에 치중하면서 통상부문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도 세계적 경기부양론이 본격화한 배경으로 꼽힌다.
국내적으론 극심한 내수침체속에 생산과 투자급감이 나타나고 있으며 갈수록 실물경제 기반이 붕괴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다행히 국내환율이 안정되고 외환수급도 큰 문제가 없는 점이 위안이다. 국제금융시장 동향등 대외환경의 변수가 걱정이지만 내수부양에 적극 나설 환경은 충분히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자세가 달라지고 있다 = 정부는 지난 2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주재의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내수진작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작 마련한 대책이라곤 수요자금융 확대, 아파트중도금대출등 경기부양 효과가 의심되는 소극적 조치들 뿐이었다. 그나마 수요자금융의 경우 아직도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중이며 빨라야 다음달중에나 윤곽이 드러날 것이란 얘기가 많다.
그러나 최근 IMF측의 자세가 적극적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우선 경기부양을 위해 세제(稅制)분야나 금융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의 지원책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강하다. 재정경제부 당국자는 『재경부 내에 감세(減稅)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강하지만 점차 수용하는 쪽으로 기우는 상황』이라며 『금융분야에서도 IMF와 합의한 수준을 벗어나는 큰 폭의 본원통화 공급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IMF체제 초기의 움츠러든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한 당국자는 『내수진작이 당장 시급한 만큼 다양한 조치들은 IMF와 비공식 협의를 거쳐 조기에 실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4분기 정책협의결과가 주목된다 = 정부는 본격적인 내수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더 늘린다는 방침이다. 또 부가가치세율이나 특별소비세율을 인하하는등 감세(減稅)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경우 재정적자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고있다.
2차 추가경정예산때 확정한 올해 재정적자규모는 21조5,000억원. 새로운 내수부양 조치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 규모는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재경부 일각에선 IMF와 4·4분기 협의때 재정적자규모를 GDP의 6%인 26조원수준까지 늘리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분위기. 다만 세수(稅收)감소 효과가 올해 당장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적자 규모를 굳이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적지않다.
통화공급에 대한 제한을 사실상 없애려는 움직임도 있어 IMF의 대응이 주목된다. 정부와 IMF는 연말 본원통화공급 규모를 25조6,400억원으로 제한한 상태. 이를 대폭 늘리는 방안도 함께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극심한 경기침체를 반영, 성장률을 마이너스 4%에서 마이너스 6∼7%로 하향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나이스 IMF 국장은 지난 14일 『올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6%로 떨어지고 내년에도 0%에 머물러 경기침체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률에 관한 한 이미 합의가 끝났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물가상승률은 9%로 합의돼 있지만 최근 추세로 볼 때 8%대로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실업률은 6%대에서 8%대로 조정될 전망. 고금리와 긴축을 중심으로 한 IMF 정책이 실물경기 침체를 불러오고 자산가치의 급격한 하락과 그에 따른 디플레이션 우려를 증폭시킨 결과다. 【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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